민상금(전 서울시의원)

 
 

우리가 스스로 대한민국을 선진국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이며, 아직은 아니라고 부정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지난 10월 21일 누리호 발사 장면을 바라보면서 위성 모사체가 궤도진입에는 실패했다 할지라도 지구상의 200여 국가 가운데서 위성을 자력으로 발사할 수 있는 세계 7번째 국가라는 사실에 자부심과 긍지에 두 어깨가 으쓱했다. 뿐만 아니라 IT산업 세계 1위, GDP(국민총생산) 세계 10위, K팝과 K방역은 물론 종합예술의 상징인 영화 기생충에 이어 지난 여름의 미나리, 그리고 요즘 세계를 들썩이는 오징어 게임 등등. 그래서 이제는 우리나라도 선진국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라 생각했다.

사회학자 로널드 잉글하트가 주장하는 선진국의 기준은 전혀 다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울수록 인류의 관심사는 생존에서 삶의 질과 민주주의 심화로 옮겨간다. 즉 경제 수준이 올라가면 타인에 대한 배려는 물론 약자에 대한 관용도 커지며 나아가 민주주의의 내실도 깊어진다. 뿐만 아니라 자유와 평등이 표면적 제도적으로 보장된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실제로 개인의 일상에서 자유를 충분히 누리고 평등하게 존경받는 효과적 민주주의가 실현되었을 때 선진국이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효과적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두 개의 지표가 있다. 하나는 친족이나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유대와 관용, 자유에 대한 열망, 타인에 대한 배려, 인류 전체의 문제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집약할 수 있는 '자기표현의 가치'이다. 다른 하나는 사회지도층을 형성하는 엘리트가 얼마나 부패하지 않고 청렴한가를 나타내는 '엘리트 고결성'이라고 한다. 효과적 민주주의를 나타내는 지수 자체가 형식적 민주주의와 엘리트 고결성의 곱으로 계산될 만큼 엘리트 고결성은 선진국 척도의 결정적 요인이 된다. 

우리의 현실은 LH 사태와 대장동 게이트에서 보듯이 법조계 엘리트 집단의 부정부패를 생각하면 아직은 선진국이라고 말할 수 없지 않을까? 특히 우리나라의 능력주의로 대변되는 특권층 문제 역시 선진국 진입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특권의 불공정에만 몰두한 나머지 불평등 문제는 소홀히 했다. 다시 말해 특권을 쟁취하는 과정에는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특권의 규모를 축소하는 데는 무관심했다. 

끝으로 요즘 정치인 사이에 회자되는 '내로남불'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의미의 유행어라는데 로맨스와 불륜에 대한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사용하는 것 같다. 로맨스와 불륜은 어원부터 다르다. 로맨스는 로망, 로맨틱, 로맨티스즘처럼 세심하고 특별한 감정의 순수하고 품위 있는 사랑의 대명사다. 그러나 불륜은 처음부터 인간 윤리에서 벗어나고 사람의 도리에 어긋난 패륜이 바탕이다. 

이처럼 로맨스와 불륜은 본질적으로 격이 다르고 질이 다르다. 정말이지 불륜은 아무도, 아무것도 끼어들 수 없이 오직 욕정에 사로잡힌 감정으로 종말은 죽이거나 죽는다. 그렇지만 로맨스는 제어되고 조율되어 비극적인 아름다움이거나 혹은 아름다운 비극으로 승화되는 러브스토리를 낳는다. 결론적으로 시민 각자의 의식 수준이 로맨스와 불륜을 분별할 수 없다면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소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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