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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가을, 가슴 시린 농민정거섭(해남군농민회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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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0.29  15:5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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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녘, 콤바인 작업에 열중하다 고개를 들어 지평선 끝을 보는 순간 산등성이를 넘어가는 붉은 노을이 눈에 들어온다. 하던 일을 멈추고 붉은 노을이 자취를 감출 때까지 감상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다.

논을 갈고 씨앗을 뿌렸던 봄이 엊그제 같은데 황금빛이던 들판은 지금 또 다른 풍경으로 옷을 갈아입고 벌써 가을걷이 끝자락에 와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넓은 들녘에는 가창오리가 떼로 몰려와 앉을 곳을 찾아 이리저리 비행하며 잠시나마 군무를 선보인다.

이른 봄부터 모내기할 논에 논둑을 정비하고 논갈이를 하고 4월 말부터 모내기를 하였다. 모내기가 끝나면 이때부터는 심어놓은 모가 잘 자라도록 물 관리와 병해충관리, 잡초관리를 세심하게 해야 좋은 결실을 거둘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특별히 어려운 것이 있다. 바로 물 관리다. 모든 생명에 물은 필수요소다. 벼의 일생에서 생육기에는 충분한 물을 공급하고 영양분을 주어야 새끼치기를 하고 더 많은 낟알과 쭉정이가 없는 충실한 알곡을 얻을 수 있다.

유독 물이 잘 빠지는 논이 있다. 매년 중장비로 논둑을 보강하고 작년에는 대형 중장비를 동원해 논둑을 넓게 했다. 그리고 올해는 논둑에 필름을 심어 보강하고 양수기를 돌려 물을 담았지만 3일을 넘기지 못했다. 올해도 물 관리에 실패해 수확은 보잘 것 없다. 내년 봄에도 비가 온 뒤에 논둑이 촉촉이 젖었을 때 보강필름을 다시 심고 논둑 다지기를 해볼 생각이다.

가을은 깊어지고 하루해는 짧다. 제때 수확해야 하는 들녘의 알곡들, 짧은 해, 논으로 밭으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농부들의 손길을 재촉한다.

일교차가 커지고 아침과 밤에는 제법 쌀쌀하다. 지금은 추수에 여념이 없는 농민들의 마음에도 시린 구석이 있다. 수확기를 앞두고 비축미를 시장에 방출해 쌀 가격을 끌어내리는 정부에게는 소비자만 있고 농민은 없다.

조합원들이 애써 가꾼 농산물을 제 가격을 받고 팔아야 할 농협들은 올해 추곡수매 선지급금을 일제히 40kg에 6만원선으로 결정했다. 농협들은 수확기를 앞두고 추곡수매 선지급금을 결정해 왔다. 농협의 선지급금 결정은 고스란히 시장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어떤 농협들은 치솟는 인건비와 물가인상률을 반영해 추곡수매가를 결정하는데, 그 외 농협들은 무엇을 근거로 추곡수매 선지급금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했을까? 대부분의 농협들이 비슷한 결정을 한 것을 보면 지들끼리 모여서 담합이라도 했나? 하는 의심이 든다. 농협은 조합원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제 가격에 잘 팔아야 한다. 그것이 농협이 해야 할 역할이 아니겠는가.

몸도 마음도 넉넉해지고 여유로워져야 할 풍요의 계절에 추수를 서두르는 농민들의 마음 한 구석은 시리고 시름은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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