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천(해남제일중 교사)

 
 

얼마 전 점심시간에 1학년 남학생 한 명이 날 보고 말을 붙였다. "국어 숙제로 우리 학교 선생님 중 한 분을 인터뷰해야 하는데, 선생님께서 해주시겠어요?" 몇 마디 대답해주면 될 텐데 어려울 게 뭐 있겠냐는 생각에 선뜻 "그러마" 하고 대답했다.

학원이다, 숙제다 해서 바빴는지 한참 후에야 교무실에 남학생 두 명이 찾아왔다. 조용한 교실을 찾아가 마주 앉고 보니 그럴듯한 언론사 인터뷰 분위기인데, 가지고 온 질문들이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적당히 몇 마디 대답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이 되는데, 무슨 계기가 있었나요?" "교직 생활에서 가장 기뻤을 때는 언젠가요?" "'학생들이 예쁘게 보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가 있나요?"

두 명의 예비 기자가 번갈아 질문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질문지를 미리 주라고 할 것을 하는 늦은 후회와 함께 더듬더듬 대답하다가 마지막 질문에서 멈칫했다.

"혹시 교사가 꿈인 학생들을 위해서 선생님이 가장 갖추어야 할 것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말씀해주세요."(아이코, 이놈들 강적이다. 처음부터 그냥 바빠서 인터뷰 못 한다고 할 것을….)

교사가 가장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천천히 생각해봤다. 담당 과목에 대한 전문성, 미래 사회에 대한 전망, 인성교육, 생활지도에 대한 탁월함. 모두 중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가장'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 한 가지만 꼽아 주라는 말이 아닌가? 더군다나 장차 후배 선생님이 될지도 모를 제자들에게 말해 줄 것이라니, 고민 끝에 대답했다.

"내가 생각하는 선생님의 덕목을 한 가지만 들자면 '학생을 이해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중학생 시기는 한창 사춘기라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을 할 때도 있고, 돌출 행동으로 수업 시간에 선생님을 당황하게 할 때도 많아요. 이럴 때, 꾸중하기보다 여유를 갖고 너그럽게 생각할 줄 아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대충 이런 말을 하고 인터뷰를 끝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돌이켜보면 젊은 시절에는 너그러움보다 내 고집을 내세우는 경우가 더 많았다. 또, 학생을 이해하기보다 억지로라도 나를 이해시키려 했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수양이 좀 되었는지 학생들을 여유를 갖고 볼 수 있게 되었다. 자기애 강하고, 에너지 넘치는 10대 중반의 아이들 30여 명과 함께 좁은 교실에서 수업하다 보면 교사의 의도와 달리 자존심 싸움을 할 때가 가끔 있다. 이럴 때 여유와 포용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사람이 누구일지 생각해 보면 답은 금방 알 수 있다. 지금은 바로 찾을 수 있는 답을 젊은 시절의 나는 잘 몰랐다. 우리 학교의 후배 선생님들은 나의 시행착오를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끔 옆자리 후배 선생님께 스스로 다짐 삼아 이런 말을 하곤 한다.

"교사는 학생을 미워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에요. 혹,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더라도 억지로라도 그런 마음을 몰아내야지요."

교단칼럼 기고를 요청받고 몇 분 선생님과 격주로 연재를 시작할 때는 6개월 남짓이면 끝일 줄 알았는데 어느새 일 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근무하는 학교의 소소한 일상, 교직 생활에 대한 내 경험담, 교육정책에 관한 나의 짧은 생각 등을 두서없이 적어왔지만, 부족한 글재주로 독자분들의 눈을 어지럽히지 않았을지 걱정이다. 그동안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이것으로 저의 교단 칼럼을 마치고자 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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