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미(전남대 교수)

 
 

오징어게임,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부문에서 전 세계 1위를 질주하며 인기를 누리고 있는 황동혁 감독의 한국 드라마이다.

이 의문의 서바이벌 게임에서는 돈이 없어 벼랑 끝에 몰린 456명의 참가자들이 456억 원의 상금을 차지하는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더는 물러날 곳이 없는 거대한 공간에 갇힌 채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 상대가 죽어 나가거나 죽여야만 하는 게임들을 통과해야 한다.

이 드라마는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던 동화 같은 놀이들을 상상하지도 못할 잔인함과 신파극적 요소를 가미한 희노애락 감정으로 버무린 생존게임으로 구성되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달고나 뽑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유리 징검다리를 건너고 나면 마지막으로 오징어 놀이가 총 9편의 드라마 시리즈 속에서 차례로 등장한다.

어릴 적 동네 골목이나 학교 운동장에 그렸던 오징어 놀이는 세모, 네모, 동그라미를 조합한 오징어 모양의 선을 밟지 않고 '깨금박질(한 발을 들고 뛰는 것)'로 공격과 수비가 부딪히며 문을 통해 만세통까지 도달하면 이기는 전통놀이다.

마지막 승자를 가리는 오징어 게임에서는 주인공과 혈투를 벌이며 네가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남아야 하기에 할 수밖에 없는 행동으로 합리화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의 이기심을 고발하고, 무한 경쟁 속에 살고 있는 현실 속의 우리들의 모습을 어린 시절 경험했던 골목 게임의 추억을 통해 일깨우게 하는 내용인 것이다.

그런데 초긴장 속 짜릿함으로 그 드라마를 다 보고 나면 어른들의 추억 속에 깃들어진 동심을 파괴당한 느낌이 다. 게임 속의 잔인성으로 청소년 관람불가였던 만큼 어릴 적 추억의 놀이가 핏빛으로 각인되어 버리는 면도 감수해야할 지 모른다.

세계적 흥행 요소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개인적으로는 그 드라마 게임의 곳곳에서 고향을 떠나오기 이전의 어릴 적 추억을 들추는 시간이기도 했다. 수십 년 동안 이름조차 떠올려보지 않았던 친구들을 불러내듯, 학교 운동장 가장자리 솔밭 나무 기둥에 술래가 양손과 이마를 대고 등을 보인 채 읊어대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느리고 빠른 음률로 귀에 걸리는 추억 소환을 해주었다.

오징어 놀이는 쫓아오는 반대편을 피하고 공격하느라 깨금박질로 내달리고 밀치다 넘어져 무릎이 까이고, 무리 속에서 불러대던 친구들 목소리가 배어 있는 격한 놀이였다.

국자에 설탕을 녹인 후 소다를 넣어 만든 달고나로 만든 별 문양을 혼자서 집중하여 완성해 갈 때도 곁에는 숨죽이며 지켜보던 친구가 있었고, 골목을 점령했던 동네 친구들이 내지르던 목소리도 가끔 지나가는 자전거나 리어카에 길을 열어줄 때 잠시 멈췄다가 이내 떠들썩했었다.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 퍼담아온 샘물을 부어 땅에 선을 긋고 놀았던 사방치기 놀이, 8자 놀이, 달팽이 놀이, 그리고 남학생들의 강탈거리인 고무줄 놀이, 큰 옷핀에 줄줄이 걸어 훈장처럼 가슴에 차고 다녔던 핀 치기 등은 다시 해봐도 금세 따라할 것 같은 생생한 기억까지 끌어내주었다.

거기에 어둡고 거친 내용과 대조적인 밝은 색상과 화려한 영상으로 연출을 극대화시켰다. 어릴 적 놀이처럼 추억을 지켜주는 고향은 그렇게 어떤 환경이든, 어떤 상황이든 기어코 피어나는 풀꽃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땅끝임에도 한반도를 흡입할 수 있고, 작은 땅 한국이 전 세계로 뻗을 수 있는 가능성 너머 실증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를 매기고 싶다.

변화는 곳곳의 익숙해져 있는 일터의 주인이 아닌, 첫 방문자의 시각으로 돌아보는 연습에서 시작될 수 있다. 오늘 나의 낯선 시선이 새로운 변화를 이끌고 관광테마가 풍성한 고장을 만드는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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