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춘(법무법인 클라스 대표 변호사)

 
 

주자십회(朱子十悔)의 첫 번째인 '불효 부모사후회'의 가르침에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음을 절감하는 나날이다. 지난달 미처 마음의 준비 없이 장모님을 훌쩍 여의고 나니 여러 추억이 되살아난다.

그 시절의 모든 부모가 다 그렇겠지만 장모님의 자식들에 대한 헌신 또한 지고지순하였다. 외손들에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신 것을 생각하면 그저 고개가 숙여진다. 출가하여 가정을 이룬 아이들 내외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추모하며 모두 끝까지 떠나시는 길을 함께 해주어 송구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는 것 같다.

37년 전 8, 9월, 결혼을 앞두고 장래의 처가댁에 뵈러 갈 때면 장모님께서는 늘 남광주 아침 시장의 크고 튼실한 서대로 서대국을 푸짐하게 끓여 내셨다. 담백하면서도 감칠맛 풍부한 국물과 통통한 서대의 부드러운 식감들로 그 서대국이 얼마나 맛있었던지 내가 옛 이야기를 할 때면 으레 그 시절 장모님 서대국 이야기가 곁들여졌다. 부모님을 여의고 나서야 얻은 깨달음 중 하나는 부모님은 연로하시더라도 마음을 안온하게 해주는 절벽의 난간같이 생존해 계신다는 것만으로도 자식들의 삶에 큰 의지가 된다는 것이다. 그 빈자리의 허전함과 두려움은 사는 동안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친상을 당한 자녀들은 경황 중에 장례를 치르고 어느 정도 평온을 회복하면 피할 수 없이 돌아가신 분의 재산 승계에 관한 법적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유산이 많으면 많은 대로 상속분을 갖는 가족들 사이의 상속재산에 대한 합리적이고 원만한 분할이 과제로 된다. 이로 인한 갈등으로 형제간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망인께서 생전에 편애하시던 자식이라도 있어 미리 재산을 나누어 주었다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상속분 계산이 복잡해질 뿐만 아니라 유류분 반환 청구와 같은 상속재산을 둘러싼 송사가 본격적으로 벌어지기도 하고, 법정에서는 누가 더 효도를 하였는지에 관한 저급한 공방이 이루어지기까지 한다. 그런 지경에 이르면 부모님을 잃은 상심은 온 데 간 데 없고, 이를 지켜보는 판사의 마음은 측은과 분노가 뒤섞인다.

사망으로 개시되는 상속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재산(적극재산) 외에 법적으로 소극재산이라고 부르는 채무도 그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적극재산은 없고 오히려 빚만 많이 남게 된 경우는 그 규모가 얼마인지 알기도 어려운 채무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강구하여야 한다. 이를 위한 절차가 상속포기, 상속의 한정승인 절차이다.

상속포기, 상속의 한정승인 모두 원칙적으로 상속개시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 해당 신고서가 접수되어야 한다. 예전과 달리 이 기간을 준수하지 못하더라도 여러 예외적 절차에 따라 한정승인의 절차를 통하여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은 있으나 간단치는 않고, 위 기간을 정확하게 산정하지 못할 수도 있으므로 사망일로부터 3개월 내 절차를 밟는 것이 안전하다.

상속포기는 적극재산과 소극재산인 채무를 묻지 않고 일체의 재산에 대한 승계 자체를 받지 않는 것이고, 한정승인은 적극재산과 소극재산을 모두 상속받되 다만 소극재산이 적극재산을 초과하는 경우에 대비하여 소극재산에 대한 책임범위를 상속받은 적극재산의 가액의 범위로 한정하게 되는 것이다.

피상속인의 사망으로 상속이 개시되는 경우 자식들을 비롯하여 그 상속인이 되는 사람들 사이에는 순위가 있고, 선순위 상속자격자가 상속을 포기하게 되면 후순위자가 상속하게 되므로 과다한 채무의 승계를 피하기 위하여 선순위 상속인들이 모두 상속을 포기하는 경우라면 후순위 상속인들까지 모두 상속포기 절차를 밟을 필요가 있다. 상속재산 중 적극재산과 소극재산의 규모를 잘 알 수 없는 경우를 대비한다면 한정승인의 방법이 합리적일 수 있으나 상속채무의 채권자들로부터 개별적으로 소송을 제기당하게 되면 각각의 채권자에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번거로움을 피하려 한다면 상속재산 자체에 대한 파산절차를 고려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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