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고천암에 철새가 도래하는 것이 농사를 짓고 있는 나에게는 그다지 기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55만평의 황금갈대와 붉은 석양을 순식간에 뒤덮는 겨울철새의 환상 군무는 그 어떠한 영상보다도 장관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아름다운 영상으로 펼쳐지는 환상군무가 철새들에게는 천적에 대한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일 수도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와 동물사회의 생존수칙으로 쓰이는 약육강식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하나 된 몸짓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의 약육강식은 경쟁과 이기주의를 낳아 이미 지역간, 국가간 부의 불균형을 초래했다. 그 수위는 정점에 이르러 WTO와 국제정세는 정부의 시장개입을 철저히 억제시켜 완전 자유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이제 농업은 농민만이 풀어야할 과제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생존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결국 철새들이 본능을 통해 보여주는 통일된 몸짓뿐이다. 동구권 국가들이 유럽연합(EU)에 편입하여 자본주의의 경제상승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듯이 유기적인 공동체의 구성은 시대의 흐름이다. 해남농업이 자생력을 갖기 위해서는 농민, 농민단체, 행정기관, 협동조합 등을 하나로 묶는 통일된 시스템이 필요하다. 각자의 역할속에서 의사의 공동결정, 유기적인 협조와 참여, 공동 책임과 역할 분담 등이 하나의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지는 해남지역 단일통합망이 구축 돼야한다. 또한 단일통합망을 통해 철저한 투자계획, 제도개선, 차별화 정책, 독창적인 아이템, 경쟁력제고에 따른 집중적인 지원 등이 요청된다. 만약 통합망을 토대로 해남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전남과 전국을 넘어 아시아권의 공동체 형성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이제 해남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더 이상 반목과 갈등의 역사를 낳아서는 안 된다. 자존심과 자부심은 때로는 아집이 되어 자신의 발목을 잡을 수 있지만 위기와 극한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자신을 잊고 괴력을 발휘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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