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천(해남제일중 교사)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된 지 벌써 2주가 지났다. 20세기 학교들은 전국의 모든 학교가 9월 1일에 2학기를 시작하였지만, 요즘은 학교장의 재량사항이 되어 여름방학이 끝나는 날에 곧바로 2학기를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다. 따져보면 학기 시작일만 바뀐 것이 아니다. 놀토와 갈토(?) 시절을 거쳐 주 5일제가 전면 시행되면서 학교 수업일수도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학교의 겉보기 환경도 좋아져 냉난방기가 가동되는 쾌적한 교실에서 대형 화면의 전자칠판에 인터넷으로 찾은 시청각 자료를 띄워놓고 공부하는 풍경이 흔하다. 복도에는 정수기가 설치되어 있고, 교실마다 사물함이 비치되어 있어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는 학생들이 드문 것도 과거와 다른 풍경이다. 가끔은 아예 가방 없이 학교에 오는 학생도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 시절의 깍두기 머리는 사라지고 자신의 기호에 맞는 머리 맵시에 갖가지 색깔의 염색을 한 학생도 가끔 볼 수 있다. '세상 참 좋아졌네~'라는 감탄사가 옆에서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학생들이 느끼는 감정은 어른들 생각과는 매우 다른 것 같다. 개학한 교실에 들어가며 '그동안 잘 보냈어요?'하고 묻자 '아니요!'라고 합창을 한다. 예전처럼 숙제가 많아 전전긍긍할 것도 아니고, 집안일을 거드느라고 방학내 종종거릴 일도 없었을 텐데 너무 힘들었단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어요?"

"학원 다녔어요."

방학 동안 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은 대부분 학기 중에도 같은 곳을 다녔을 것이니 특별히 더 힘들 것도 없었을 것인데, 이구동성 힘들었단다. 학기 중에 주말을 지내고 온 월요일에 같은 말을 물어봐도 흔쾌히 즐거운 주말을 지냈다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아이들이 힘든 이유는 몸이 아니라 마음 때문 아닐까? 서울대에서 시작해서 지방의 사립대까지 수직으로 서 있는 대학의 서열구조의 윗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인생 성공의 지름길이고, 우승열패와 승자독식의 사회구조 속에서 내 아이가 뒤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의 걱정 속에 아이들이 잠시도 편하게 쉴 수 없도록 하는 피로 덩어리가 마음 깊은 곳에 들어있는 것 같다.

이런 사회구조가 온존하고 있는데, 청소년기는 자아정체성을 키우는 소중한 시기이니 풍부한 경험을 하고, 폭넓은 독서를 하며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고 사회시간에 가르치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울 때가 있다.

내가 교직에 들어서기 2년 전쯤 한 중학생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절규하며 교육 현실을 고발한 사건이 있었다. 세상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많은 이들이 교육 현실을 고치겠다고 나섰고, 내가 전교조에 가입하여 활동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교사 34년 동안 과연 아이들의 현실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세속의 성공과 가문의 영광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꿈을 설계하고 행복을 향해 지름길을 찾는 일이 되는 것은 언제쯤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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