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천(향우·경기도 과천시)

 
 

옛 조상님들,
나랏일 하루해가 저물자마자
서재에 의관 접어놓고 
더러는 노송사에 신발 끈 풀고,

보리밥 김 서린 세상 풍진을
메마른 들판 곳곳 단비 내리듯
새하얀 한지(韓紙) 한 장 한 장에 
벼루 바닥 닳도록 새겨 놓았네 

쳐다보는 하늘마다 구름 한 점 안 뜨고
앞 논배미 뒷밭이랑
내 자식 아까운 잎 시들어 가도
목마른 입술 꾹 다문 채
오직 먹물 짙게 갈던 나날
무명옷 소매 높이 걷어붙이고
날카로운 붓끝에 펼쳐낸 님들의 한 평생,
곡절곡절 알뜰히 꾸린 사연(事緣)은
('묵헌일기' 함께)옥필 육백 편!

머언 길 이백 성상 고이 지나서
오늘에 새록새록 빛을 뿜고, 
후예 대대에 잠언인 듯 사무치겠네

전시관 찾아드는 발걸음 붐비고
봄가을 바람결에 낭송 소리
강 건너 산 넘어 꽃 피고 지리.

주성산 노송사 하늘에 별인 듯
호롱불에 붓 그림자 새삼 그립네

<글쓴이는 올해 83세로 해남 산이 노송리가 고향이다. 올해 2월 노송리에 유물전시관이 건립되어 전남도지정문화재인 조상의 서적이 보존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소재로 시를 지어 해남신문에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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