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규(진이찬방 식품연구센터장)

 
 

필자는 귀촌한 지가 10년이 지났지만 농사일에 관심을 갖고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일이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다. 힘들 때는 가끔 고천암을 중심으로 펼쳐진 넓은 벌판을 찾는다. 광활한 뜰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막혔던 가슴이 뚫리고 무언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갖는다.

농사는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함께 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만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귀농·귀촌을 고려할 때는 바로 거주 주택과 농지를 구입하려고 하지 말고 모든 것을 임대부터 하는 것이 순서이다. 직접 농사일을 해보고 자신이 생긴 뒤에 집과 농지 및 농기계를 구입하는 것이 안전하다. 봄을 지나 한여름의 햇살에 사람 키만큼 자란 고천암의 벼이삭들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은 귀촌한 모든 분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농촌은 봄에 뿌린 씨앗을 여름 내내 영글게 해서 가을이 올 때 수확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농촌의 가을은 풍성하다. 농지는 준비된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노력한 대가를 그대로 제공해 주기 때문에 귀농해서 성실하게 농사일을 시작한 사람에게는 확실한 대가를 보장해준다.

귀농자의 경우에는 많은 농지를 일시에 구입하기가 쉽지 않다. 금전적인 어려움도 있지만 농지를 팔려는 사람이 적어 구입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은 면적에도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특수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해남은 우리나라에서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기후가 만나는 독특한 지리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후에 맞는 특수작물을 재배한다면 수익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요즘은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사람이 젊은 사람보다는 은퇴자에서 많이 나타난다. 해남의 경우에는 기온이 따뜻해서 겨울을 지내기가 다른 어떤 지역보다 수월한 편이다. 굳이 동남아를 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따뜻한 기후여서 유리한 자연환경으로 인해 귀농·귀촌이 기대되는 지역이다. 해남 어느 마을을 가더라도 넓은 벌판이 있고 곡식이 누렇게 익어가는 장면은 가을에 흔히 맛볼 수 있는 장관이다.

그러나 요즘은 기후 변화가 심해 농사일이 쉽지만은 않다. 예정에 없는 폭우가 내리고 태풍의 강도가 시간이 갈수록 심해져서 정성 들여 가꾼 농작물이 수확기에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 또한 우리나라의 기후가 아열대 기후로 서서히 변해가는 추세라서 기후에 적합한 작물을 선제적으로 재배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밭농사는 일손을 구하기 힘들어 경작을 포기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특히 농촌 인구의 평균 연령이 70세를 넘어서고 있어 은근히 귀농·귀촌을 바라고 있는 마을이 많다. 군에서도 귀농·귀촌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실효성이 떨어진다.

이제는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농촌의 삶이 도시보다도 안정되어 행복지수가 높다면 힘들게 생활하는 도시인들의 귀농·귀촌이 더욱 빠르게 이루어질 것이다. 코로나19가 길어져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자영업자는 매출이 떨어져 힘들어하고 일정 장소에서 사람들의 단체출입이 금지되다 보니 각종 교육 프로그램마저 멈춘 지 오래다. 가깝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도 부담스럽고 여러 부문이 제한되다 보니 삶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그래도 귀농·귀촌해서 희망을 갖고 버틸 수 있는 힘은 이웃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수확할 수 있는 농작물이 있어서일 것이다. 해남의 가을 아침은 옅은 안개가 끼어 있고 그 사이 황금색으로 익어가는 들판을 볼 수 있어서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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