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좋은 엄마 아빠이고 싶다¨

행복한 바이러스다. 부모역할교육이란 건.  그래서 교육이 필요한가 보다. 이 집에 들어선 순간 ‘행복한 집이구나’ 감이왔다. 글쎄, 어떻게 아냐고. 해맑고 거리낌없는 대영이(동초교 6학년) 얼굴이랑, 구김살 없는 엄마 금순씨(37 상업) 모습이 그렇고 조금은 근엄한 척 하는 재철씨(40 세무서)도 막상 입을 열자 “나 행복해요”라고 바이러스를 막 발산한다. 이들이 정말로 행복할까. 아이에게 직격탄을 날려보았다. “대영아! 너 행복하니.” “네.” “ 왜.” “엄마 아빠가 날 알아줘요. 존중해주니까요.” “어떻게 존중해 주는데.” “전엔 내가 하지 않은 일도 내가 했다고 막 몰아붙이고 야단치고 그랬어요.” “예를들자면” “책이 없어지면 엄마가 그랬을리는 없고 니가 책 어디다 뒀지라고 몰아세우거나, 컴퓨터 바이러스는 니가 다운받은 게임탓이야 하며 다 지워버린다든가했는데 지금은 혹시 책 못봤니”라고 물으세요. 무뚝뚝한 아빠 재철씨가 “정말 내가 그랬어, 미안해.”라고 말한다. 충격. 아빠가 그것도 권위로 똘똘 무장한 이 땅의 가장이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대단한 내공이다. 금순씨는 지난 2001년 공공도서관에서 부모역할 교육을 받았다. 엄마 노릇하기가 힘들어서다. 외아들이라서 버릇없이 키우지 말아야겠다. 계획적이고 규칙적인 생활, 자기 절제가 있는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지만 아이는 자유분방하고 절제력이 없어 항상 큰소리와 야단, 간혹 매를 동반하기 일쑤였다. 이러다 아이도 나도 망가지는 것이 아닐까…. 그러던 차에 부모역할 교육을 받게됐는데 너무도 자기한테 딱이었단다. 글쎄 오죽했으면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이 교육은 받고 갈까 고민했을까. 교육의 효과는 아이가 먼저 알아차렸다. 대영이는 새로운 일이 있을 때마다 “이것도 배운 거야. 지금교육보다 더 강한 교육은 없어.”라고 말하곤 했다. 금순씨가 교육을 받고 난 후 변화는 부정적인 말이 긍정적인 표현으로 변한 것이다. 그것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어법, 존중하는 어법,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전달하는 어법인데 가령 이것 좀 해주겠니, 이렇게 하는 게 어때. 이건 이렇고 이건 이런데 어떻게 할래라고 말하는 것들이다. 또한 이 집에는 규칙이 있다. 아침 출근시간이면 반드시 ‘사랑해’라고 서로 안아줘야만 출근이 가능하다. 또 잠자리에 들기 전에 ‘우리는 점점 나아지고 있어’라고 다짐해야 한다. 조금은 쑥스럽고 닭살 돋는 말 ‘사랑해.’ 부부간에도 잊고 사는 말인데 말 가는데 마음도 간다고 자꾸 하다보니 정말로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더란다. 바닷가 모래알만큼, 저 하늘의 별들만큼. 이 교육을 받고 난 후 가장 큰 변화가 뭐냐는 질문에 이구동성 엄마와 아들 모두 아빠란다. 백배 천배 변했다고. 도대체 교육은 엄마가 받았는데 아빠가 변하다니. 대영이가 토요일에 사극을 보는데 아빠가 “대영아 나 몹시 피곤한데 그거 재방송 하는거니까 다음에 보면 안되겠니”라고 묻더란다. 그래서 “네 아빠 주무세요. 엄마랑 책볼께요”라고 말해줬단다. 옛날 같으면 아빠가 “야 TV꺼. 안끌래”라고 내 속을 박박 긁었을텐데 이제는 아빠가 나에게 저렇게 정중히 부탁하는데 어떻게 거절해. 엄마의 변화에 아빠가 전염돼 버린 것이다. 그런데 재철씨의 말은 조금 다르다. 엄마 탓도 있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따뜻한 부모들의 이야기’라는 책도 읽고 성당에서 교육도 받았다며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교육을 받았다고 모두 실천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텐데 금순씨에게 물었다.  대답대신 금순씨가 꺼내 놓은 것은 두툼한 공책 두권이다. 한권에는 금순씨와 재철씨가 대영이에게 보낸 편지들이 차곡차곡 정리 돼 있고, 다른 한권은 일지였다. 교육 내용을 실천해보고 미흡한 것을 정리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결할지를 일일이 기록해뒀다. 하지만 지금도 아이에게 가끔은 윽박지르고 강압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말에 좋은 부모가 되는 것도 교육이 필요하고 끊임없이 훈련을 해야하는구나. 몇 번 강의 받아서 될 일은 아니라는 것을 절감한다. 그러면 아이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취재하는 중에도 대영이는 놀 궁리에 빠져 있었다. 엄마 나 영어 다했어. 그럼 시간이 많겠네. 응, 엄마하고 놀거야. 금순씨는 대영이에게 공부는 목표량을, 노는건 시간을 정해두고 하도록 한다. 미리 약속을 해두고 하기 때문에 계속하자고 떼쓰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대영이는 생일날이나 크리스마스에도 선물보다도 엄마 아빠랑 노래방가고 여행가는 게 좋다고 말한다. 장난감이나 물건은 금방 싫증 나지만 엄마 아빠랑 노는 것은 싫증 나지 않단다. 권투 줄넘기 배드민턴 농구 쌀밥보리밥 끝말잇기 동화짓기 등등 놀게 너무 많아서말이다. 3학년때만 해도 대영이는 수업시간에도 상상을 많이했다. 그래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수업 시간 내내 계속된 그 상상 때문에 대영이 성적이 엉망이었는데 지금은 상상에 빠져드는 시간이 짧아졌다.  그만큼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받아드리기 시작한 것이 가장 큰 변화여서 지금은 성적도 꽤나 향상됐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나이먹고 결혼하면 모두 부모가 되는 것으로 알았는데 막상 부모가 되니 이건 정말 산넘어 산이다. 부부관계도 그렇고, 아이들이 하나 둘씩 생기면 애 키우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같이 살 때는 그래도 여기저기서 주어 듣고 서로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법을 알아 차렸지만 지금은 달랑 부부가 가정을 책임져야 하니 어려움이 클 수밖에. 금순씨는 말한다. 몰라서 답답하게 속상하며 사느니 배우고 훈련해야 하지 않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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