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미(전남대 교수)

 
 

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 학교 선거를 돌아본다. 5학년부터는 남학생 반, 여학생 반으로 나뉘었고, 남학생들이 으레 1반부터 우선적으로 배정되었다. 난 6학년 5반이 되었고, 여학생이 1반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던 나폴레옹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 교실에는 또 다른 불가능이 있었다. 남녀 합반인 저학년의 반장 선거에도, 6학년 학생회장 선거에도 후보는 으레 남학생뿐이었다. 그냥 남학생이 대표가 되는 것이 당연한 듯 각인된 채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대학생이 되거나 사회 초년생이 되기 전까지는 여중, 여고에서 동성끼리의 학교생활이었다. 고정화된 성역할에 의구심을 가져볼 기회도 없이 어른이 되어버렸다.

고요한 연못에 돌멩이를 던져 파문을 일으키듯 그 고정관념을 건들었던 것은 초등학생이던 딸이 학교 학생회장을 나간다며 선거용 포스터를 만드는 것을 보았을 때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여자도 공대를 갈 수 있는 거구나'를 우연히 알았던 순간의 큰 충격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왜?'라는 질문 한 번 자각하지 못했음에 더 놀라웠던 것이다. 의도치 않게 처한 환경에 의해 형성된 나의 제한된 잠재의식을 딸 앞에서 들키고 싶지 않았던 부끄러운 깨달음이었다.

'나 때는 그랬어'라는 요샛말의 '라떼세대'의 공감 가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미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며 분개할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미 세상은 바뀌어 있는데 다시 꺼내보는 것은 팔꿈치로 슬쩍 찔러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는 '넛지'가 중요해서이다.

교육자는 질문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질문은 토론을 낳고, 생각의 힘을 기르는 것이다. 가정집에 TV가 흔치 않았던 시절이고 학교 배움이 전부였던 학창 시절에 누군가 당연히 여겼던 현상들에 '왜'라는 물음표를 던져주었다면 콩나물 교실 속 아이들의 꿈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당시엔 날마다 익숙하게 보는 선생님과 TV 뉴스 속 대통령이 아이들 롤모델의 전부였을 만치 생각 터치가 적었다. 반면 지금은 정보가 넘치고 넘쳐 되레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최근 우리 대학 교수 1200여 명이 직선제로 선출하는 교수회장에 당선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부반장 선거에서 차마 나를 찍지 못하여 동표를 만들었고, 가장 친한 친구의 배반으로 2차 투표에서 떨어진 '웃픈' 이야기를 하면서 이번엔 꼭 나를 찍겠다고 했다. 당선 기대감 제로였던 출마의 여러 동기 중의 하나는 어릴 적 나처럼 길들여진 잠재의식을 건드는 것이었다.

전체 교수의 20%를 밑도는 소수자 여교수이자, 홍일점에 익숙했던 5% 정도의 공대 여교수가 나선 것이다. 회장 후보가 되어 소견발표를 하고 세간에 거론되는 것 자체가 유리천장이니, 기울어진 운동장이니 하는 익숙한 사회통념을 없애갈 교육자로서의 실천행동이라 생각한 것이다. 반이 여학생인 모든 대학에 익숙해질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딸아이처럼 이미 세상과 함께 당당히 걸어가고 있는 여학생보다는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 시스템에 대한 것이었다. 물론 교권과 후생복지, 대학 행정과 관련된 심의 의결을 하는 주요 역할을 맡는 기본은 기승전 학교발전을 위한 활동이지만, 눈에 익숙하게 보이는 것만큼 인식변화에 효과적인 것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오늘도 알게 모르게 내가 선택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길들여지고 있다.

누군가의 질문이나 책 속에서 깨우침을 얻는다는 것은 고개를 숙였던 총알을 피했다는 나폴레옹이 발견한 네 잎 클로버 같이 어쩌다 오는 행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날마다 자신에게 던지는 '왜?'라는 습관적 질문에는 '누군가 또는 무엇을 위하여'라고 답할 때가 더 많을 것이며, 그것이 일상 속 널려진 세 잎 클로버 같은 행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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