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률(교사, 시인)

 
 

9살 무렵 달마산 기슭을 떠났다. 부모님 따라 어쩔 수 없이 떠나기는 했어도 달마산은 나를 설레게 했고, 방학이면 늘 이 산을 찾을 정도로 특별했다. 그 어린 나이에 무엇이 그리 좋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뭔가에 되게 끌렸던 모양이다.

혹자들은 그런다. "그 나이에 무슨 생각이 있었다고?" 그래 뭐 대단한 생각이 있었을까마는 내게 달마산은 그리움을 키워주었고, 동시라도 쓰게 되면 이 산에 사는 나무나 풀이나 새들이 대상이 되곤 했다. 아마 이 시절의 정서가 글(비록 낙서에 지나지 않지만)을 쓰며 즐기는 삶으로 이끌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어느 해 근무지를 옮기며, 이곳이 생소한 아내를 설득해 정착하기로 했다. 아직도 오지라는 느낌이 남아 있는 해남과 달마산 일대를 둘러보며 아내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내게는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녀 또한 맘에 들어 했다. 우리는 미황사 아래에 터를 구했고, 지금은 '점빵'을 열어 오가는 사람들과 어울려 지낸다. 아내에게 이곳이 아직도 적응의 과정이기는 하나 대체로 만족스러워 한다.

어쨌든 반세기 가까이 시간이 흐르며 멀어질만 했을 텐데도 기어이 찾아들게 만든 달마산이다. 여기 터를 잡은 후 오히려 그 매력에 더 빠져들게 한다. 아내의 평에 따르면, 둘러본 다른 어떤 곳도 이곳만은 못했다고 한다. 이곳이 고향이라는 이유로 단순한 회귀본능에 의해 되돌아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를 생각해 보자. 조금의 주석을 달자면, 걱정과 고통을 주는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부정적 의미로 인해 이 용어를 쓰는 게 맞나 싶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지금 상황을 지배하는 현상이기에 코로나 시대라고 명명하기로 한다. (혹자들은 코로나로 인해 인류의 반성과 지구의 회복력을 키운 계기였다며 오히려 긍정성을 부각하기도 한다. 필자 또한 그 입장에 더 가깝다.)

어쨌거나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어 호모 이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는 새로운 진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돈벌레처럼 달려들던 '쩐의 전쟁'에서 '쩐의 공유'를 모색하고, 기존의 삶에 반성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한 발 더 나간다면 자본주의의 폭력성과 파괴성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동안 도시화에 매몰되어 밀집과 밀접, 밀폐라는 3밀에 허우적대던 사람들이 코로나를 통해 사회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는 어쩔 수 없이 친자연적, 생태적 인간으로의 진화를 따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해남이 삶에 주는 차 한 잔 같은 곳이라고 나는 기꺼이 말한다. 삶을 더 알차게 살아보고 싶을 때 '해남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라고 권한다. 당신의 삶이 해남을 만끽하도록 허락하여 보시라. 해남은 그 삶에 여유와 안락을 제공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당신의 삶이 해남에서 시가 되고 음악이 되어 보시라. 당신이 그곳에 서 있는 풍경을 상상해 보시라. 당신이 어렵다면, 당신의 아이들에게 해남을 누릴 기회를 제공해 보시라. 두려워 마시라, 이곳은 매우 평화롭다.

끝으로 김종철 선생의 평론집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의 한 대목을 전한다. 이 말이 해남을 두고 한 말은 아닐지라도 해남살이 하는 나를 투시하는 말로는 충분한 답을 주고 있다.

"필요한 것은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다. 그것은 생태적 존재로서 우리 자신의 본성을 깊이 느끼는 전환에 대한 근본적인 감각이야말로 모든 시가 태어나는 모태이며,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시인은 모두 본질적으로 가장 심오한 생태론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그러기에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시적 존재로서의 자기 자신을 재발견하고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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