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춘(법무법인 클라스 대표 변호사)

 
 

신년 덕담을 나눈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7월 마지막 주가 되었다. 폭염 경보가 나오기 시작하고 열대야로 지친 밤도 벌써 여러 번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근로시간이 많은 편에 속하고 휴가 기간은 선진국에 비하여 짧은 편이다. 우리의 삶에 서양 선진 문물이 끼친 영향이 지대하지만 휴가 기간은 여전히 그 차이가 큰 것 같다.

사법의 본질로 인하여 큰 틀에서는 재판의 형태가 비슷하지만 재판 절차의 구체적 운영 방식은 나라마다 국민의 의식구조와 생활방식이 투영되어 다른 면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절차적 공정성의 추구와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는 사법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 개선과 정비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것은 공통적 모습이다.

소송절차 자체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 법원이 한 여름철인 7월 말 전후와 한 겨울의 연말연시에 2, 3주 정도의 휴정기를 두어 오고 있는 것도 이러한 사법운영의 발전적 모습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법원의 휴정기는 2006년부터 시행되었는데 미국과 유럽의 사법 선진국이 주로 여름 휴가철에 장기간 법정을 열지 않는 것에서 시사받은 것이다. 종래 재판부별로 휴가 시기가 달라 재판업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휴가를 제대로 가지 못하는 불편을 해소하여 주고, 한편으로는 판사들로서도 상당한 기간 법정을 열지 않는 이 시기를 사건의 적정한 처리를 위한 여러 준비에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을 기대한 것이다.

항상 격무에 시달리면서 여름 휴가철에도 길어야 1주일 정도만 법정을 쉴 수 있어 장기간 휴정하는 서구를 부러워하였기 때문에 여름과 겨울에 2주 이상 휴정기를 두기로 한 것은 법원 내부뿐만 아니라 변호사들로부터도 큰 환영을 받았다. 물론 휴정기라고 하여 모든 재판업무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가압류, 가처분 등과 같이 제도의 취지상 신속하게 처리되지 않으면 아니 되는 사건이나 구속 중에 있는 피고인에 대한 형사사건의 경우는 휴정기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재판기일이 열리거나 재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촉박한 구속 기간으로 인하여 심리에 지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법조인이면서도 판사와 검사, 변호사는 그 역할이나 업무수행 방식, 입장 등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늘 비교된다. 변호사가 된 뒤에는 교분을 나누는 분들이 판사 시절과의 차이를 많이 묻는다. 이는 대부분 변호사로 활동하며 지내는 생활방식이 어떻게 변했는지가 궁금하여서일 것인데, 그때마다 재조 시절 선배 변호사님들로부터 들었던 말씀과 대동소이한 답변을 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업무일정의 결정에 대한 능동성에 큰 차이가 있다는 대답부터 할 때가 많다.

근래에는 사법도 국민을 섬기는 것을 근간으로 하고 있어 변호사의 일정을 확인하고 가급적 존중해 주지만 재판일정을 정하는 주체는 판사이고 그 재판에 출석하여야 하는 변호사와 당사자는 판사가 정한대로 따라야 하므로 변호사의 일정은 그가 수행하는 사건을 담당하는 판사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제 나는 변호사로서도 법원이 정한 휴정기의 큰 혜택을 누리고 있고, 계속되는 재판일정으로 인한 피로가 누적될 쯤이면 자연스럽게 기다리게 된다.

인류의 과잉생산과 소비로 인하여 초래될 미래의 재앙에 대한 현자들의 경고에 공감해오는 나로서는 세계가 함께 휴지기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공상을 품어볼 때가 많다. 여러모로 힘든 시절이지만 앞만 보고 달려왔을 테니 법원의 휴정기처럼 유용하게 활용해보는 것도 좋겠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