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섭(해남군농민회 정책실장)

 
 

지난 5일과 6일 갑작스럽고 집중적인 폭우로 곳곳이 침수되고 농경지와 농로가 유실되는 등의 피해가 잇따랐다. 이런 자연재해 앞에 우리 인간들은 한없이 작아지고 숙연해짐을 느낀다.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신속하게 대응하는 관계기관과 공무원들의 피해복구 노력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우리는 일상에서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무심히 지나치는 경우가 흔하다. 이례적인 자연재해야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겠지만 비로 인해 매년 반복되는 피해들이 있다. 경험과 반복을 통해 충분히 예견하고 예방할 수 있지만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공감은 하면서도 당장 일어날 일이 아니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일부 농가에게는 혜택이 되지만 또 다른 농가에게는 피해를 입혀 농-농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예산을 낭비하는 경우가 있다. 해남군이 지원하는 객토지원 사업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딱딱한 황토 땅을 뒤집어엎어 부드럽고 배수가 잘되는 마사토로 객토를 하는 사업이다. 객토를 한 밭은 비가 오면 토양유실을 피할 수가 없다. 비가 오면 고구마 밭에서 흘러내린 흙탕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이렇게 고구마 밭에서 유실된 흙은 고구마 밭 주변의 배수로를 황토 흙으로 메꾸고 농로와 농경지로 흙탕물이 흘러들어 고구마밭 주변의 농작물에 피해를 입힐 수밖에 없다.

많은 예산을 들여 개거사업을 하지만 이처럼 배수로를 가득 메운 흙은 배수로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린다. 매년 배수로에 쌓인 흙을 예산을 들여 처리하지만 이런 일들이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고구마를 재배하는 많은 농가들이 이런 피해를 방지하기위해서 해마다 장비를 동원해서 피해가 예상되는 곳을 정비하고, 토양의 유실을 방지하기 위해 고구마밭 고랑에 일정한 간격으로 볏짚을 깔거나 낮은 곳을 깊게 파고 집수지를 만드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경우가 태반이다.

이렇게 피해가 발생했을 때 고구마재배 농가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피해가 발생한 주변 농가에게 적절한 보상과 함께 원상복구에 힘을 쓰고 이듬해에 작물이 들어가기 전에 장비를 동원하여 피해예방 조치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피해보상과 원상복구를 요구하는 피해농가에게 "물이 아래로 흐르지 위로 솟구치나"하면서 피해농가에게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사람, 피해는 인정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해남군에서 지원하는 객토지원 사업은 해남고구마의 상품성을 높여 소비자에게 인지도를 높이고 농가소득에 기여하기 위해 농가에 지원하는 농가 소득사업일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한 피해에 대한 대책 또한 시급한 것이 현실이다.

농정심의 때마다 객토사업에 대한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피해예방 대책과 지침을 만들어 객토사업 농가들이 지침에 따라 사업을 진행하게 하고 담당자는 지침대로 사업이 완료됐는지 확인하여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고 건의를 하지만 결과를 놓고 봤을 때 농정심의는 왜 하는지 모르겠다.

고구마 농사는 다른 농산물보다 돈이 되는 농사이다 보니 요즘 해남뿐만 아니라 많은 지역에서 고구마 농사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농민들이 돈 되는 농작물에 관심을 갖고 쏠림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내가 돈 벌자고 남에게 피해가 갈 것을 뻔히 알면서 피해에 대한 예방조치를 하지 않는 파렴치한 농민들은 없었으면 좋겠다. 

농촌의 들녘은 비가 오고 나면 초록이 더욱 짙어지고 파랗고 맑은 하늘은 아름다운 경관을 선사한다. 그러나 농로를 지나다 보면 흙탕물이 도로에 쌓이고 배수가 안 되어 경관을 해치고 불편하기까지 하다. 이처럼 토양유실과 그에 따른 피해는 매우 심각하다.

농경지 토양 유실의 원인에는 여러 경우가 있는데 우리 농민들이 예방할 수 있는 경우도 많다. 농경지의 경계가 되는 논둑이나 밭둑을 트랙터로 경운작업을 해서 없애는 경우가 아마도 대부분일 것이다. 이런 경우 비가 오면 그 밑에 위치한 배수로, 도로, 농경지로 토사가 밀려들어 피해를 입히고 경관마저 해치게 된다. 돈을 들여서 복구도 해야 한다. 우리 농민들의 일터이자 삶의 공간인 농촌 들녘을 우리 스스로 가꾸고 보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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