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동 씨가 박스를 가득 실은 경운기 운전석에 앉아 평소 엄마라고 부르는 활동지원사 이삼숙 씨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 김영동 씨가 박스를 가득 실은 경운기 운전석에 앉아 평소 엄마라고 부르는 활동지원사 이삼숙 씨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세상은 따뜻한 손길이 있어 살만 합니다"

엄마라고 부르는 활동지원사의 5년간 헌신
유일한 낙인 경운기도 주변 도움으로 수리

'세상은 주위의 따뜻한 손길이 있어 살 만하다.'

화산 해창리에서 홀로 살아가는 지적장애인 김영동(49) 씨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함께 살던 구순의 고모가 치매증세로 요양원으로 옮겨가면서 몇 년째 나홀로 생활한다. 그는 혼자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된다.

하지만 따뜻한 동행인이 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인 이삼숙(75·해남읍) 씨는 주말과 휴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6시 30분이면 어김없이 김 씨의 집에 도착해 3시간 이상씩 돌봄을 이어가고 있다. 5년째 식사와 청소 등 집안일을 도맡아 하고 있는 것.

김 씨는 어렸을 때부터 숫자도 세지 못할 정도의 정신적인 장애가 있었다. 이젠 이 씨의 도움으로 1년 만에 이름 석자도 쓰게 됐다. 주일이면 인근 해창교회도 빠지지 않고 다닌다. 주일 예배는 이 씨의 밥상머리 교육이 크게 작용했다. 해남읍 양무리교회 권사인 이 씨는 "국가에서 급여를 받고 있지만 소명감이 없다면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나를 엄마로 부르며 잘 따르고 혼자 있을 때는 하루에 30~40번(9번 누르면 통화)의 전화가 걸려온다"고 말했다.

김 씨의 동행인은 또 있다. 해남군의용소방대연합회장을 역임한 송대호(76) 씨. 송 씨 자신도 몸이 불편한 상황에서 온통 쓰레기장이던 집안 정돈과 수리는 물론 창고를 새로 지어줬다. 면사무소에 요청해 주택 진입로 정비도 했다.

정신장애를 겪는 김 씨가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은 어릴 때 배웠던 경운기를 몰고 다니면서 폐지나 박스를 모으는 것이다. 경운기는 그에게 유일하게 낙을 주는 '애마'이다. 하지만 오래된 경운기가 고장 나기 일쑤이다. 고장 나면 길가에 세워놓고 집에 오는 일이 잦아지고 수리비도 감당하기에 벅차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송 씨는 해남읍에서 국제종합기계 해남대리점을 운영하는 후배 고려승(58) 대표에게 부탁했다. 고 씨가 흔쾌히 동의해 지난주 경운기 엔진을 새로 교체했다.

송 씨는 "중증장애를 겪으면서 혼자 힘들게 사는 모습을 지켜보면 딱하고 항상 눈에 밟혔다"면서 "후배가 선뜻 나서줘서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장애인에게 지급되는 월 60만원과 쌀 10㎏으로 생활한다. 그러면서도 하루 3000원 벌이인 박스 수집에 나선다.

활동지원사인 이 씨는 "아들 같은 영동이가 교회 헌금을 내겠다고 빈 박스를 모으고 동네 어르신들이 제대로 걷지 못하면 부축도 해준다"면서 "주변에서 도움 주신 분들을 보면 세상은 그래도 따뜻하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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