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률(교사·시인)

 
 

살고 있는 공간이 정원이라면 어떨까? 늘 정원에 사는 삶이라면 그게 설령 눈총을 받는다 해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꽃과 잎사귀를 쓰다듬으며 기쁨을 얻는다면 그게 공주나 왕자의 삶이 아닐까, 그게 행복이 아닐까?

혹자는 '이런 곳에서 뭐 하는 짓이래?'라고 할지도 모른다. 또 욕은 할지라도 부러움을 어쩌지 못할 수도 있겠다. 어쨌든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그림이다. 밀레의 농부와는 대조된다고, 부르주아 냄새가 난다고 힐난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 해도 당신에게 선택하라고 한다면 무어라 하겠는가?

내가 태어난 곳은 달마산 깊숙한 작은 마을이다.

밤이면 산짐승들 울음소리가 집 앞에서 들리곤 했다. 산속이라 달이 떠오르면 한밤중이기도 했다. 학교엘 가려면 산길로 십리를 가야 했고, 비가 오는 날은 그 길이 무섭기도 했다. 중간에 냇가를 건너야 했는데 종종 동네 어른들이 손을 잡아 건네주기도 했다. 물이 심하게 불어난 날은 되돌아가야 할 때도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 이곳이 싫었다. 산 너머 어떤 곳에 대한 동경으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였고, 떠나던 날 엄마의 울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나는 이곳을 떠나 살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이곳에 정착하였다. 그리고 돌아온 나는 큰 정원을 선물로 받았다. 달마산과 들과 바다, 이곳에서 삶을 가꾸고 있는 풀과 나무와 작고 큰 동물들, 조금 늦게 오는 아침과 진도 쪽 위로 번지는 저녁노을, 종종 맨눈으로도 볼 수 있는 은하수, 또 달마산을 넘실대는 구름과 그 위로 뜨는 달….

이 큰 정원을 사유지처럼 이용하는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시골을 모르는 소리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인정한다. 농사의 고됨을 모르는 주제에 배부른 소리나 늘어놓고 있는 꼴이기도 하다. 뭐 굳이 내 가난을 드러낼 필요야 없지만, 농협 돈을 빌려다 집 한 채 장만해서 살고 있다. 그렇긴 해도 집 주변 달마산과 들녘은 분명 내게 주어진 복이다.

가끔 찾아주는 지인들이 이곳은 공기 맛이 다르다고, 속을 씻어주는 느낌이라고 한다. 내가 살아보니 최고의 공기 맛이다. 달마고도라는 아름다운 길은 내 산책로다. 미황사 뜰에서 맞는 바람은 또 얼마나 시원한지 모른다. 땅끝에서 얻는 미천한 사유는 내 삶을 되비춰준다.

땅끝은 내게 이런 곳이다. 그래서 늘 자랑질한다. '와서 살아보시라. 욕심만 크지 않다면 큰 정원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 조금의 과장일지 모르지만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꽤 있다. 나는 그들과 노을이 번지는 뜰에서 한 잔의 술을 나눈다.

나는 이곳에서 꿈꾼다. 아름다운 삶을 꿈꾸는 사람들은 이곳으로 오시라. 같이 꿈꿔 보기를 주저하지 마시라. 이곳을 찾는 사람들과 달마고도를 걸으며 쓰잘데 없는 얘길지라도 '삶이란 무엇인가' 개똥철학을 나누고 싶다. 그러다가 어설픈 해답 하나에 만족하고 싶다. 땅끝에서 촘촘한 섬들을 보며 내 파편화된 삶을 엮어보고도 싶다. 지친 벗을 불러 잠시 휴식이 되고 싶다.

나는 희망한다. 풍족하지 않지만 나누고, 부족한 것들을 모아 함께 누리고 싶다.

그래서 나눌 수 있는 일들 몇 가지를 모색한다. 수많은 누군가와 달마산 약수터에서 배를 채우고, 풍경을 마음에 담고, 시를 짓고, 함께 여행이 되는 일을 찾아보자. 차 한 잔, 술 한 잔을 나누며 벗이 되는 사람들을 불러보자.

이 정원에서 함께 꽃을 심고, 가꾸고, 또 함께 꽃이 되어도 좋겠다.

이 땅끝정원에서 정원사로 살아도 좋겠다. 이곳에서 새살을 얻고, 그 새살로 더 건강하게 살아보고 싶다. 바로 이곳, 땅끝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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