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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와 작은 결혼식
양동원 편집국장  |  dwyang9@h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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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7.17  11:5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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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절인 17일(내일) 서울에서 결혼 예정이던 지인의 딸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 격상으로 결혼식 날짜를 부랴부랴 연기했다. 예식을 불과 1주일 남기고 갑작스레 발표된 거리두기 강화조치가 예비 신부에게 날벼락으로 다가왔다.

다행히 같은 예식장에서 동일한 조건으로 개천절 대체휴일인 10월 4일로 날짜를 다시 잡았다. 결혼식 연기는 어찌 보면 당사자에게 불가피한 선택이다. 가족과 친지 등 친족만 49명으로 참석이 제한되면 평생 한 번뿐인 결혼식에 친구 얼굴도 보지 못한다. 친족마저 예식장 참석을 부담스럽게 여긴다. 그래서 일부는 예식 이전에 얼굴만 비치고 서둘러 떠난다. 이런 풍경이 너무나 뻔해 결혼을 미뤘지만 마음 한 켠의 답답함은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연기된 날짜에도 코로나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수도권의 거리두기 4단계 조치는 결혼을 목전에 둔 예비 신랑·신부에게 '내게 왜 이런 일이'라는 탄식을 던져줬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예비 부부가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며 인원제한 해제를 요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하지만 대부분 예비 부부들은 연기를 선택했다.

이쯤 되면 점차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는 작은 결혼식(스몰웨딩)도 생각해봄 직하다. 작은 결혼식은 적은 수의 하객을 초청해 적은 비용으로 치르는 예식이라고 할 수 있다. 보여주기식의 허례허식을 털어내자는 것이다. 국내 결혼정보회사가 올해 초 신혼부부 1000명을 상대로 작은 결혼식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92.4%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유로는 '비용 절감'(37.6%), '개성 있는 결혼식'(19.6%), '신랑과 신부가 주인공이어야'(19.4%) 순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판단과 이를 실행에 옮기는 행동양식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작은 결혼식이 일반화되지 못한 데는 여러 요인이 내재되어 있다. 면면히 내려온 체면문화가 개개인에게 따라붙으면 좀체 떨어지지 않는다. 여기에다 부모님의 '축의금 회수'도 달려있다. 작은 결혼식이 현실에서는 축의금 회수에서 자유로운, 즉 '있는 자'의 여유라는 게 역설적이기는 하다. 다만 요즘 모바일 청첩장에 코로나에 기댄 축의금 계좌번호 안내가 보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정착되는 추세이다.

사실 우리나라 전통 결혼식이 작은 결혼식에 가깝다. 어렸을 적 시골에서 지켜본 전통 혼례가 지금도 뇌리에 뚜렷이 남아있다. 혼례식은 주로 농한기인 겨울에 신부집에서 열린다. 사모관대 차림의 신랑과 족두리를 쓴 신부가 맞절을 하고 합환주(合歡酒·서로 잔을 바꾸어 마시는 술)를 마신다. 신부는 술잔에 입만 갖다대지만 신랑은 원샷이다. 눈이 내리는 한파에도 신랑은 땀을 뻘뻘 흘린다. 하객들은 '얼마나 긴장했으면' 하고 낄낄 웃는다. 나무로 만든 기러기는 지금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부부가 절개를 지키고 행복하게 살라는 의미이다. 일가 친척과 동네 사람들이 참석한 마을잔치는 끝나고 신부집에서 첫날 밤을 치른다.

덧붙이자면 혼례식에 기러기가 등장하는 것은 암컷과 수컷의 의가 좋기 때문이다. 암수 한쪽이 죽어도 끝까지 절개를 지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짝 잃은 기러기'나 '기러기 아빠'(철새인 기러기를 빗댄 뜻도 있다) 등의 말도 생겨났다.

진정한 의미의 작은 결혼식은 언젠가 보편화될 것이다. 코로나 시국에서 머리 싸매지 말고 작은 결혼식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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