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자(농촌마을공동체 비슬안 대표)

 
 

귀농한 지 11년이 되었다. 처음 귀농하여 농사를 짓다 보니, 생각은 했지만 현실로 오는 문제가 컸다. 다달이 들어가야 하는 공과금과 생활비였다.

우체국 분류 작업을 새벽 4시부터 아침 7시까지 했다. 농업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았다. 그렇게 꼬박 1년을 다녀야 했다. 농업이라는 것이 땅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투자가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매년 벌어서 다시 투입되는 구조이다. 농사로 모은 돈으로 하우스 짓고, 내년엔 두 동, 내후년에도 투입되는 것이 농업이다. 10년 전엔 귀농인이고 지금은 농업인이다.

새로운 산업이 일어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있는 지금, 내가 속해있는 농업에 대한 고민을 안 할 수 없다.

직업은 職(직)과 業(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직은 일이고 명함인 것이다. 업은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이다. 직을 갖지 말고 업을 가져야지 대를 물러 줄 수 있는 가업이 되는 것이다.

농업의 진지인 해남에서 농업인으로서의 자긍심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농민수당이 처음으로 지급된 곳도 해남이다. 농민수당이 실질적 농민수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해남 농민으로서의 직이 아닌 업의 자격이 필요하다.

독일에서는 농부가 되려면 농업학교부터 다녀야 한다. 아무나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아무나 농부가 될 수 없다. 국민의 먹거리와 생명, 그리고 국가의 식량 주권을 지키는 국가기간산업인 농업을 아무한테나, 사사롭게 맡길 수 없다는 정신과 원칙이다.

독일 농촌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트랙터에서 놀고 농사를 놀이 삼아 배운다.

그리고 자라면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아들이 아버지의 농업을 가업으로 물려받는다. 농부는 자랑스러운 직업이다.(오마이뉴스)

독일은 공장에서 물건만 잘 만드는 줄 알고 있다. 유기농업도 잘하고 있는 곳이다. 독일 농업이 강한 데는 독일 사람들이 자기네 유기농산물을 50% 높은 가격임에도 사서 먹는다.

건강보다 환경을 생각하고, 환경을 지키는 유기농가에는 사회가 적절하게 보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돈을 더 주더라도 유기농산물을 사먹는다.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부와 기꺼이 지불하는 시민이 있기에 지금의 독일 농업이 있다.

선진국의 산업 기반은 농업이다. 미국도 농업국가이며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는 농업기반이 탄탄한 국가이다.

우리는 농업을 터부시한다. '이것저것 다해보고 일 없으면 마지막으로 농사나 짓고 살지'라는 생각이 뿌리 깊게 있기 때문에 농업에 대한 자세가 고쳐지지 않는다.

해남이 농민수당이라는 큰 물결을 만들었다. 그렇듯이 농업이라는 업이 가치 있고 자긍심 있게 되기 위해 또다른 노력을 해야 한다. 전문화된 인정된 농업인을 키워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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