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진(시인·수필가)

 
 

고향이란 언제 듣기만 해도 가슴을 설레게 하는 어머니와 같이 포근하다.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한 지 어언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지금도 어릴적 추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땅끝 마을은 해발 122m의 사자봉이 코앞에 있고 그 주변에 50여 호의 마을이 옹기종기 널려있다. 50년대에 땅끝마을은 농경지보다는 산과 바다에 인접하여 산나물이나 고기잡이가 주업으로 생활이 빈곤하였으며 면소재지까지 약 8km 오솔길을 걸어다녔다.

그러나 주변의 천혜자원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동남간 해변에 수령 200년은 됨직한 노거수들이 방풍림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곳은 서쪽과 남쪽의 땅이 바다와 맞닿은 채 기암괴석과 벼랑, 포구 등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또 주변에는 두륜산, 달마산 같은 잘생긴 산이 많아 일찍이 고려 명종 때의 시인 김극기는 '산은 백번을 돌고, 촉나라 비단을 비스듬히 땅에 깐듯 물은 천굽이나 굽이치네' 라고 노래했다. 그래서 누구나 내 고향에 오면 마음을 활짝 열 수 있는 곳이다.

바다와 육지가 맞닿은 곳에는 토말비가, 사자봉 정상에는 아름다운 전망대가 있다. 이 토말비에는 '태초에 땅이 생성되어 인류가 발생하였으며 한겨레가 국토를 그어 국가를 세웠으니 맨 위가 백두산이고 맨 아래가 이 사자봉이니라'고 쓰여있다.

파도 소리를 벗 삼으며 해송, 떡갈나무, 소사나무, 상수리나무, 산찔레, 산복숭아, 칡덩굴을 헤치고 오솔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봉황대와 전망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해변가에서 전망대까지 모노레일도 설치되어 숲길 기차여행을 즐기듯 남해바다를 한눈에 바라보면서 전망대에 오를 수 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고기를 잡고 있는 고깃배와 땅끝마을의 앞마당인 모래벌이 펼쳐져 있다.

또 멀리는 제주도 한라산 봉우리가 아스란히 보이고 고산 윤선도가 귀양을 살며 어부사시사를 읊었다는 보길도와 어룡도, 완도 앞의 백일도, 흑일도, 당인도 같은 크고 작은 섬들이 시야에 들어와 문득 시간이 가는 것을 멈춰 놓고 싶은 충동이 일 정도이다.

사자봉 옆에 둔 송호리 해수욕장에는 200~300년은 됨직한 해송이 긴 모래사장 주변에 빽빽이 늘어서 있는데 이곳은 겨울이 오면 고운 모래들이 바닷물에 씻겨나가 앙상한 갯바위들만 남았다가 여름이 되면 고운 모래들이 밀려와 금빛 모래밭을 이룬다. 해수욕장 한쪽 옆에는 사자봉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냇가가 있고 아직 때 묻지 않는 마을 인심도 좋아 유쾌한 기분으로 해수욕을 즐길 수 있다.

이와 함께 서정리의 달마산 기슭엔 신라 선덕왕 24년 의조화상이 창건했다는 미황사도 있어 돌아오는 길에 들러볼 수 있다. 이 밖에도 해남에는 고산 윤선도가 사색당쟁으로 밀려나 은거했던 윤씨 종가의 녹우당, 삼산면의 대흥사와 비류암, 대둔산의 왕 벚꽃나무 자생지, 화산면 방죽리의 백조와 왜가리의 서식지, 연동리의 비자나무 숲 등 볼만한 것이 많다.

어린 시절,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선생님과 지혜를 가르쳐 줬던 아저씨, 인생의 꿈을 꾸게 해준 친구들…, 그 고향땅 땅끝에 다들 잘 살고 있는지, 그들도 나처럼 이리 늙어가는지, 소식 한자 없이 살기 반세기…, 아, 이제는 정말 고향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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