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승(전 전남평생교육진흥원장)

 
 

벌써 30여년 전인 1990년대 초, 희대의 사건이 우리나라를 뒤흔들었다. 전직 세무공무원 이모 씨가 전국 제일의 땅 부자로 등장한 것이다. 그는 1970~80년대 목포, 해남, 강진 등 전남 서남부 세무서에서 국공유지 매각 업무를 담당하면서, 가족이나 친인척, 지인 명의로 수천만 평의 국공유지를 사들였다. 당시 정부에서는 SOC 사업과 경제 발전을 위한 재원 확보 때문에 국공유지를 대량 매각했었다.

이 씨가 차명으로 매입한 국공유지는 대략 4만여 필지에 5000여만 평. 여의도 면적의 20배에 달했다. 이 씨는 국공유지 매각 담당 공무원이자, 이를 다시 사들인 매수인인 셈이었다.

당시 국공유지 매각은 정부의 주요 과제였다. 이 씨 자신은 이 업무에 충실한 죄밖에 없다고 항변했다. 그의 말대로 그는 탁월한(?) 업무 수행으로 표창을 받았으며, 법적으로 처벌할 시기가 지났고, 뾰족한 방법도 없었다. 이후 1994년 대법원이 일부 토지에 대해 환수 판결을 내렸으나, 대부분이 제3자에게 넘어가 환수는 지지부진했다.

이 씨 사건은 우선 엄청난 규모라는 측면에서 국민들을 경악하게 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요즘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들의 투기 행위는 허탈감을 넘어 절망감을 주고 있다. 국민의 토지·주택 문제를 책임지는 공공기관 소속원으로서 취득한 공적 정보를 자신들의 부를 늘리는 수단으로 활용해 온 것이다. 수십년 동안 죄의식 없이 이뤄진 관행이자, 서로가 묵인해 온 집단 공모의 산물이다.

최근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재개발지구 건물 붕괴 사건 역시, 부동산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탐욕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오래된 도심의 건물들을 부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는 재개발사업은 투기의 경연장이 됐다.

공사는 하청과 재하청, 재재하청으로 이어졌고, 안전 조치는 부실해졌다. 시행과 시공 주체를 둘러싸고 고소·고발전은 일상이고, 정작 재개발의 주인인 원주민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부동산 가격 폭등은 단지 수도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 중소도시의 부동산값도 만만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이들의 내 집 마련은 요원하기만 하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라는 허울은 젊은이들을 더욱 가난하게, 더욱 좌절하게 만들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취업은 최악의 상태에 빠졌다. 미취업 젊은이들에게 결혼은 사치이고, 출산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미래 세대인 그들의 관심사는 온통 부동산과 주식, 가상화폐 등 돈 버는 데 있다. 특히 아파트로 대표되는 부동산에 대한 욕망이 대표적이다. 이 욕망의 근원에는 천정부지로 뛰는 부동산, 즉 아파트 폭등에 대한 본능적인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결혼 건수는 21만3500건.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다. 출산율은 0.84명으로, 역시 세계 최하위다.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녀 수는 2.05명. 실제 출산율과 너무 큰 차이가 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이자, 이 모든 통계의 이면에는 주거 문제가 있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부동산 폭등을 '합법적 약탈'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내 집 마련해 보겠다고 뼈 빠지게 일해 저축한 사람들의 처지에서 보면 폭력으로 뺏어가는 약탈보다 더 나쁜 약탈이다"고 말했다. 인간 생활의 기본적 요소 중 하나인 주거가 약탈의 대상이라면, 그 사회가 얼마나 살풍경하겠는가.

그동안 부동산 폭등을 막기 위한 노력은 부단히 계속됐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정책이 시행됐지만 기대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지방은 소멸의 위기에, 수도권은 과밀에 고통받고 있다.

지방과 수도권이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지방에서 해답을 찾을 수는 없을까. 투기의 지옥과 천국이 교차하는 한국 사회, 언제나 살만한 세상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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