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률(교사·시인)

 
 

어떤 친구가 물었다. "해남에 오면 잘 살 수 있을까?" 나의 대답은 주저 없다. "당연하지. 어떤 마음으로 와서 사는가 하는 문제가 있긴 하지만." 며칠 전 달마고도 점빵에 찾아온 여행객이 "이곳에 오니 오래된 시골 맛이 나요. 딱히 뭐랄 수는 없지만 정감어린 풍경이랄까, 예전 생각을 건져 올리게 되는 작은 샘 같다고나 할까? 암튼 편안하고 좋아요.", "이곳이 도시에서 먼 탓도 있고, 산과 들과 바다가 오밀조밀 어울려 있는 탓도 있겠죠. 저는 정착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여기 정착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답니다."

우리가 삶의 터전을 바꾼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결정이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시골행은 많은 고민을 통해 이리저리 재어보기를 수없이 하여야 할 것이다. '그래 볼까?' 했다가도 망설이기를 수없이 하고, 가족들 합의 과정을 거치고, 또 망설이다가 '에라, 가보자' 하다가도 다시 번복하길 몇 차례 한 후 결단을 하고 시골행을 결행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는 이삿짐을 싣고 가는 내내 '이게 맞나?' 하는 불안한 의심을 떨쳐내지 못할 것이다.

이 중간 사연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 과정에서 다수는 불안한 의심을 받아들여 시골행을 포기하고 관성에 따르자는 쪽으로 기울게 된다. 어느 결정이나 늘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어쨌든 불안한 의심은 부정적 의견을 강화하는데, 시골행은 불안한 의심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향이라면 그나마 그 불안이 다소 줄어들겠지만 아예 낯선 곳이라면 그 불안은 의심할 바 없이 클 것이다. 그럼에도 시골행을 결단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까?

필자도 수없이 많은 생각 속에 시골행을 선택하고 막상 정착하기까지 상당히 망설였다. 그 과정에서 한 곳에 정착을 준비하다가 마을 민심에 밀려 포기하기도 했었다. 불안하던 차에 걷어차 준 격이랄까, '그래도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 의심을 더 이상 갖지 않게 내쫓김을 당했다.

이유는 외지인이 들어와 자신들이 임대해서 벌던 땅을 차지했다는 것과 자신들과의 경계지역에 축대를 쌓아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곳에 정착한다는 것은 불안감에 더해 외지인에 대한 차별이 불 보듯 뻔히 예견되는 일이었다.

그 후 이곳저곳을 찾아보다가 고향마을 인근을 선택하게 되었다. 고향이라고 해봤자 아주 어릴 적에 떠나 특별한 연고가 있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친척분들이 살고 있어 뭐라도 낫지 않겠나 하는 '무모한 믿음(?)'이 전제된 일이었다. 그리고 서정마을에 터를 구했고, 지금은 점빵집 하나 해서 살고 있다.

이곳에 정착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긍정 의심'이 아닐까 한다. '이 곳에서는 잘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중간에 정착하지 못한 이유는 지역과 마을에 대한 어떤 의심이나 조사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곳 좋은데?' 하는 조금은 막연한 동경과 이후 뒤집어진 불안과 차별이 그 이유였다.

지역이 몰락한다고 아우성치는 지금도 곳곳이 외지인과 원주민을 가르는 차별이 존재함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마을이 잘 되려면 마을이 먼저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마을은 개방을 통해 이주를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긍정 의심'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불안감 없이 들어와서 함께 어울리고, 함께 삶을 가꾸는 마을일 때, 이 마을은 젊어지고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다.

해남은 산과 들과 바다가 참 아름답게 어울리는 곳이다. 이 곳이 누구라도 아름답게 삶을 꿈꿀 수 있는 곳이길 희망한다. 또한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해남군이 나서서 '긍정 의심'으로 사람들이 편히 찾아들게 행정을 펼치는 일도 매우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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