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1913-1960)가 1947년 발표한 장편소설 '페스트'는 전염병이 창궐한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해변도시(오랑)를 무대로 1년간의 절망에 빠진 인간들의 모습을 그렸다. 봉쇄된 도시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도 자신과 무관한 일로 여기는 방관형(도피형), 신에게 기대는 초월형, 적극 대응에 나서는 참여형(반항형) 등 여러 군상(群像)이 묘사된다. 작가는 절망과 부조리의 현실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의연히 맞서는 것이 진정한 '반항'이며,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말한다.

페스트는 쥐에 기생하는 벼룩이 보균 쥐의 피를 빨아먹고, 이 벼룩에 물린 사람에게 감염한다. 피부에 검은 반점이 생기고 죽음으로 몰고 가 흑사병(黑死病)이라고 불린다. 1340년대 3년간 유럽에서 2000만~300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팬데믹'(pandemic)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전염병의 최고 경보 단계(6등급)를 의미한다. 우리 말로 대창궐로 표현할 수 있다. 현재 진행형인 코로나19를 비롯 페스트, 천연두, 콜레라, 스페인 독감 등이 팬데믹의 대표적 사례이다.

전염병을 일으키는 매개는 바이러스와 세균이다. 코로나19, 천연두, 독감 등이 바이러스에 의해 전파되고 페스트, 콜레라는 세균으로 옮긴다. 바이러스는 세균보다 작으며 스스로 생존하지 못해 살아있는 세포에 기생하고 증식한다. 반면 세균은 스스로 살아가며 질병을 일으키는 독립된 생명체이다.

예방주사는 특정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갖추기 위한 백신 접종을 말한다. 백신(vaccine)이라는 말은 암소(cow)를 뜻한 라틴어 바카(vacca)에서 유래했다.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1749-1823)가 최초의 천연두 백신을 우두(牛痘·소에서 뽑은 면역물질)에서 추출했기 때문이다. 낫더라도 얼굴이 얽은 곰보 흉터를 남기는 천연두는 두창, 마마, 손님 등으로 불리며 우리 조상들을 무척이나 괴롭혔다. '역신'(疫神)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천연두를 앓게 한다는 귀신을 두고 하는 말이다. 천연두는 제너가 백신을 개발한 지 184년이 흐른 1980년에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바이러스가 박멸된 것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처음이자 유일하게 정복한 전염병으로 남아있다.

우리에게 가장 흔하게 찾아오는 감기 바이러스는 백신이 없다. 근데 독감 백신은 맞는다. '독한 감기' 정도로 치부되는 독감(毒感)은 사실 감기와 다르다. 감기는 100가지가 넘는 바이러스가 코나 목의 세포에 침투하는 질병이다. 바이러스가 워낙 다양해 일일이 백신을 개발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반면 독감은 한 종류의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폐에 침투해 일으키는 급성 호흡기 질환이다. 그래서 예방주사가 가능하다. 다만 면역 기간이 3~6개월에 그치고 변이가 심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해마다 접종해야 한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해남에서는 60~74세 아스트라제네카 접종 사전 예약률이 88.8%에 달했다. 이는 전국 평균치(80.7%)보다 훨씬 높은 것이다. 코로나 예방주사를 맞더라도 면역 기간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모른다. 독감처럼 매년 접종해야 할 수도 있다. 코로나 접종 후유증을 걱정해 취소하거나 노쇼(no-show·예약하고 나타나지 않음)도 있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를 해결하는 최선책은 집단면역에 도달하는 것이다. 지금의 백신 접종 열기라면 올 11월 이전에 집단면역을 달성하리라는 기대도 나온다. 그렇다면 나와 우리를 위해 접종을 하는 게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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