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한 번 성찰의 시간 가지면 괴로움의 절반은 덜 수 있어"

부처님 첫 말씀은 모든 이웃을
내가 편안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사람 욕망은 결코 만족을 몰라
코로나는 결국 자업자득의 산물

사찰도 주민 곁으로 다가서야
낮아진 출산율에 행자도 없어

조실(祖室)은 선승들이 수행하는 선원(禪院)의 최고 어른을 일컫는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에는 조실 보선(普善) 스님이 있다. 보선 스님은 영암 군서 구림이 고향이다. 출가하려는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광주의 한 고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시절, 방학이면 집에 내려와 빈둥빈둥 놀기만 하던 모습을 보고 형님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도갑사 주지 스님에게 "동생을 제대로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방학이면 도갑사 방 한칸에서 생활했던 것이 불교와의 첫 인연이다. 고교 3학년 때 사미계(스님이 되지 않은 남자 수행자가 지켜야 할 10가지 계율)를 받고 스무 살에 비구계(승려가 지켜야 할 250가지 계율)를 받아 정식 승려가 됐다. 94년 대흥사 부주지, 98년 주지 스님에 이어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를 역임했다. 보선 스님은 92년 이래 30년 가까이 줄곧 대흥사를 지켜오고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보내고 난 지난 25일 보선 스님이 기거하는 염화실(拈花室)을 찾았다.

 

-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는지.

"절 생활이라는 게 시간을 지키는 일상이다. 時(시)라는 한자가 절(寺)의 하루(日)에서 나왔다. 우리나라 군대가 창설될 때도 스님의 하루를 참고해 병영 기본 생활표를 짰다. 바쁘게 보내려면 한없이 바쁘고 한가하게 보내려면 한없이 한가하다. 새벽 예불, 참선, 공양, 청소, 선방 정진, 점심, 오후 일과, 저녁 식사, 예불이 되풀이된다. 찾아오는 신도를 만나고, 외부 행사도 많다."

-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서 하신 법어가 감명 깊었는데.

"부처님이 오신 뜻과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성이다. 부처님이 세상에 던진 첫마디가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이다.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이웃을 편안하게 하겠다는 말씀이다. 45년간 피나는 고행과 도를 이뤄 이 말씀을 증명하고 포교하셨다. 열반 직전에는 경전의 내용이 되는 결론을 말씀하셨다. '제행무상 시생멸법'(諸行無常 是生滅法), 즉 이 세상은 무상하여 나고 죽는 법칙이라는 것이다. 수행해서 이게 없어지는 상태가 극락이고 행복이다. 시간은 너무 빨라서 쉬지 말고 정진하라는 말씀이다. 진리를 깨달으면 하는 일이 바로 자비이다. 모든 이웃이 불쌍하고 가련하다. 고통 속에서 그림자에 불과한 부귀영화, 권력이라는 불나방에 뛰어든다. 부처님은 그게 아니라고 증명하셨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 불교가 국교인 미얀마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태를 보더라도 모두가 형제인데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게 인간이다. 교리를 따른다고 하지만 마음속 깊이 실천하고 행하는 사람이 과연 있느냐는 것이다. 코로나19도 자업자득이다. 스스로 저질렀기에 우리 자신만이 이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나와 이웃이 함께 행복해지는 세상이 될 때까지 끝없이 정진해야 한다."

- 외출은 자주 하시는지.

"종단이 크니 행사도 많다. 함께 공부한 스님들이 25개 본사에 다 있다. 일반 신도들의 대소사에 초청도 많고 경조사 참석도 해야 한다."

- 경실련과 한국다문화센터 공동대표를 하신 적이 있는데.

"조계종 의장을 할 때 맡아달라고 했다. 경실련 대표는 사실 이름만 올렸지만 국회 세미나를 통해 불량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우리나라 이민법 개정에 나섰다. 다문화센터는 내가 만들었다. 여러 국적의 어린이들을 모아서 '레인보우(무지개) 합창단'을 구성해 유엔도 가보고 미국 대통령이 방한할 때 청와대에서 행사도 가졌다."

- 편안한 삶이라는 게 무엇인지.

"요즘은 사람들이 가는 길을 모른다. 끓어오르는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할 뿐이다. 욕망이라는 것은 근본과 실체가 없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자신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지면 괴로움의 절반은 덜 수 있다. 하지만 갈수록 그런 여유가 없다. 자기를 알고 살면 행복과 안정은 자연적으로 찾아온다."

- 지금의 코로나 사태를 불교적 의미에서 접근하면.

"코로나는 자업자득이 아닌가 한다. 건강과 맛, 색다른 것만 추구하는 데서 나온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그런 방향으로만 끌려가고 있다. 이제 하루에 단 몇 분만이라도 성찰의 시간을 갖고 자신이 가는 길을 알고 그쪽으로 가도록 해야 한다."

- 젊은이들이 힘들어하고 있는데.

"젊은 사람들이 너무 세상에 휘둘려 사는 거 같다. 객관적인 안목을 기르고 독서를 하면서 자신을 뒤돌아봐야 한다. 사람의 욕망이라는 게 만족이 되지 않는다. 돈 비가, 금관 비가 쏟아진다 한들 그 욕망을 멈출 수가 없다. 독서나 성인들의 말씀을 한 번쯤 귀담아듣고 자기 인생을 설계하면 좀 더 편안한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 대흥사에서 생활하신 지 30년 가까이 됐는데.

"처음 올 때는 부끄러운 일들이 많았다. 종단에서 분규가 가장 오랫동안 계속됐을 정도이다. 주지 스님이 몇 개월, 길어야 1~2년 하다 그만 뒀다. 외부의 엉뚱한 데서 주지를 바꾸는 일이 일어났다. 지금은 안정됐다. 유네스코에 등록된 본사로서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 대흥사가 신도나 군민들에게 점차 멀어져 가는 느낌도 있는데.

"그렇지 않아도 수행자들에게 항상 주문하고 있다. 절도 바탕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기회 있을 때마다 주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도록 말하고 있다. 삼산초등학생만이라도 장학금을 지급한다던가, 어린이들이 절에 와서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급작스럽게 이뤄지지는 않는다. 차근차근 해나가야 한다. 덧붙이자면 세계적 추세이긴 하나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이젠 결손가정이 아니면 애들을 절에 보내지 않는다. 장가를 가도 되는 일부 종단에는 출가하려는 사람이 줄을 섰다는 말도 나온다. 조계종은 행자도 거의 없다. 앞으로 스님은 수행에만 전념하고 불자들이 절 살림을 맡아야 될 정도이다. 차라리 그렇게 되면 대승불교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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