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률(교사, 시인)

 
 

해남에서 산다는 건 무엇일까?

왜 해남에서 살게 되었을까?

왜 하필이면 한반도의 최남단이라는 해남에 삶을 의지하게 되었을까?

숙명이라는 사람도 있겠고, 우연이라는 사람도 있겠다. 어쩌면 필자처럼 우연히 시작된 회귀본능 탓일 수도 있겠다.

'어쩌다 보니 이곳에서 태어났고 살다보니 그렇게 됐어'라거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보니 어찌어찌 흘러들어 머물게 됐어'라거나, '어쩌다 보니 그 남자를, 그 여자를 만나서 혼인하게 되었는데 이곳이 집이라더군' 같은 얘기들이 전제된 삶이겠다.

살게 된 이유야 어쨌든 해남이란 곳은 묘한 끌림이 있는 곳이다.

누구는 이곳에서 다시 시작을, 누구는 끝까지 가보자는 결의와 오기가 작동되었을 수도 있겠다.

이렇든 저렇든 해남은 사람을 끌고 붙잡는 어떤 힘이 있다.

그 힘의 시작은 흑석산, 두륜산, 달마산으로 이어지는 산과 화원, 삼산, 현산으로 펼쳐지는 널찍한 평야와 북일, 송지, 울돌목을 거쳐 화원에 이르는 바다가 절여내는 질긴 삶이 주는 무엇이겠다.

그야말로 산풍경, 들풍경, 바다풍경이 어우러지는 반도 끝자락이 부르는 탄성이다.

그런데 누군가 내게 "당신, 왜 해남에 살아? 해남의 매력이 뭐야?"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그것이… 그러니까… 뭔가가 있긴 있는데…." 이렇지 않을까? 뭔가가 있긴 있는데 특별히 내세울 거리가 없다.

분명한 것은 무언가 끌림이 있는데 그게 뭔지 얼른 답을 할 수가 없다. 그게 또한 매력이라면 매력이지 하는 사람도 있겠다.

퍼실리테이션 같은 프로그램이라도 진행해 보면 어떨까?

해남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해남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것이다. 내용은 다양하게 열어두고서 말이다. 이런 소주제도 괜찮겠다.

'해남은 사람이제' '해남은 풍경이여' '아따 해남은 맛이제' '해남은 문학이고 예술 아니겄어?' 뭐든 좋다. 해남의 정체성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어설프나마 '해남학'을 정립해 보는 것이다.

앞으로 지역자치가 확대되고, 또 마을 교육이 확대되어 갈 것은 이미 정해진 길이다.

이에 맞춰 해남이 무엇인지 이제 정립해 보면 어떨까? 해남의 역사를 정립하고, 해남사람들의 삶을 모아보고, 해남의 산과 들의 의미를 찾아보는 것이다.

해남의 문화를 정리하고, 문화지도를 그려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다. 해남학의 전문가를 키우고, 해남이라는 공동체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보는 것이다.

학교에서 해남학을 가르치고, 해남과 서울에 해남학연구회를 두어도 좋겠다.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둘러쳐진 마을의 폐쇄성도 걷어내고, 지역 편협성도 걷어내고, 해남다움이란 무엇인지를 찾아보는 작업은 자치시대의 필요조건이라 하겠다.

부담스러운 담장이 없어 들어오기 편하고, 들어와서는 해남다움에 젖어 유쾌해지는 해남의 정체성을 찾고, 그 정체성을 확인하며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보는 것을 상상해 보라.

땀 흘리는 삶이 있고, 그 땀을 씻어주는 문화가 있고, 눈을 즐겁게 해주는 풍경이 있는 살맛 나는 해남, 자꾸만 누군가가 오고 싶고 살고 싶은 그런 해남의 끌림을 상상해 보라.

목포와 영암과 강진과 완도와 진도와 다시 목포로 지방자치단체들이 테두리를 이루는 해남 지도를 상상해 보라.

햇살과 바람과 별들과 어울려 꼼지락거리며 살아가는 '그대'를 상상해 보라. 그리고 다시 질문하자,

'해남(학)이란 □□□이다'. '해남다움'을 찾아서 오늘 발품을 팔아 봐도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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