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춘(법무법인 클라스 대표 변호사)

 
 

변호사의 활동 영역은 매우 다양하다. 변호사 활동 경력을 기반 삼아 정치인이 되거나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경우도 점점 많아져 가고 있지만, 여전히 소송 사건의 처리가 변호사 업무의 중심에 있다. 이러한 소송분야도 잘 알려진 것처럼 대표 격인 민· 형사소송 외에도 행정소송, 가사소송 등 그 종류가 다양하고 넓다. 변호사로서는 경력이 일천하지만 그 사이 인상적이면서 인생과 부부생활에 관하여도 다시 생각하게 한 이혼사건이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사연이지만 부부가 이미 80세에 가까워 무거운 마음으로 수임한데다가, 의뢰인의 성품이 재산분할금을 미리 지급한 경우의 중간이자 공제 여부를 따질 정도로 여간 깐깐하지 않고 파탄된 부부관계가 끝내 회복되지 못한 채 결국 이혼에 이르러 재판 도중에는 물론 후에도 편치 않은 기억으로 남은 사건이다. 주변의 신록이 마음 설레게 하는 이 시절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런 경우들이 우리 사회에서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임은 분명해 보인다. 사업을 하며 모든 재산의 명의를 아내 앞으로 해두었다가 아내로부터 이혼소송을 당하자 자신의 몫을 되찾기 위하여 온갖 애를 쓰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사업 실패에 대비하여 다른 채권자의 추심을 피하려는 방도가 자신의 덫으로 된 경우도 적지 않다.

'황혼이혼' 이라는 말은 1990년대 일본에서 남편이 퇴직금을 탄 후에 아내가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급증하면서 생긴 신조어이다. 오랜 결혼생활 동안 남편의 부당함을 견디며 살아왔으나 남편이 은퇴하면서 남편의 역할인 '돈벌이'가 없어지자 더 이상 참고 살지 않으려는 중·노년 아내들의 반격과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일본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만 해도 생소한 외국 사회의 현상 정도로 그저 흥미롭게 보았는데 어느덧 이러한 황혼이혼이 우리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은 말이 된 것이다. 요즘에는 일본에서 처음 황혼이혼이 늘기 시작하던 때와 같은 동기 이외에도 아내의 경제적 자립 능력이나 재산분할제도도 황혼이혼 결심을 적극적으로 하게 된 요인인 것 같다. 황혼이혼 사건은 대부분 여성 배우자의 청구로 인한 것이다. 이는 남성들이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인데, 통계에 의하면 황혼이혼이 점점 증가추세에 있다고 하니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일이 많은 것이 삶인 모양이다.

대법원은 결혼한 지 20년 넘은 부부가 이혼하는 것을 '황혼이혼'으로 분류한다.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2017년 기준으로 OECD 회원국 중 3위일 정도로 높은 편에 속하고, 특히 황혼이혼 비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11년과 2020년 통계를 비교하여 보면 전체 이혼 부부 중 결혼생활이 4년 이하인 부부는 2011년 26.8%였으나 2020년에는 19.8%로 그 비중이 줄어든 반면, 황혼이혼에 해당하는 결혼생활 20년 이상인 부부는 2011년 24.7%에서 2020년 37.2%로 증가하였고, 그 중에서도 결혼생활 30년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1년 6.9%에서 2020년 15.6%로 2배 이상 증가하였다. 결혼기간이 30년 이상이라면 대부분 자녀가 장성하여 가정을 이루고 손자, 손녀들도 있을 연령이다. 그럼에도 아내가 이혼을 청구하는 것은 남편의 인식과는 차원이 다른 깊은 마음의 상처 때문일 것이다.

앞서 소개한 황혼이혼 청구 사건의 근본 원인도 남편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을 아내에 대한 태도였다. 어느 날 법정에서 아내는 장시간 자신의 평생이 남편으로 인하여 얼마나 피폐하였는지를 토로하며 이혼의 불가피성을 호소하였다. 남편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리고 숨을 쉬기조차 힘들다고 하던 그 아내의 말이 뇌리에 생생하다. 종국에는 적지 않게 모아 놓은 재산을 되도록 조금만 분할해주고 결혼생활을 청산하려는 남편과의 재산싸움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판결이 아닌 합의로 종결되어 이혼 후 가족관계 복원에 희망의 여지를 남겨 둔 것은 다행이었다. 인생의 여러 고비를 넘겨온 부부가 더 노력하여 말년의 불행을 피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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