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의 젊은 시절 보내고 늦깎이 신학대 입학
1993년 양로시설 설립하며 복지교회로 출발
트랙터 갖추고 고천암 간척지 1만평 논농사
7년째 이장 맡아 마을 일하며 어르신도 챙겨

 

삼산 소망교회 오영명(68) 목사는 농부이자 수림마을 이장이다. 1인 3역의 하루가 말 그대로 정신없이 지나간다. 그에게는 빼앗긴 꿈이 좌절로 이어지고, 그러면서 술로 나날을 허비한 젊은 시절이 있었다. 한계에 내몰린 삶이 역설적으로 반전의 계기를 만들었다. 마음 깊은 곳에 내재된 소명과 봉사의 본능이 의식 밖으로 뛰쳐나왔다. 서른세 살의 나이로 늦깎이 신학대학생이 되고, 마흔에 접어든 1993년 고향에서 어르신을 돌보는 양로시설을 설립해 목회 활동을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의 교회는 특수 형태의 복지교회로 출발했다. 지난 2일 소망교회를 찾아 오 목사를 만났다.

 

-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화산중(16회)을 졸업하고 집안 형편으로 고교 진학을 못했다. 의대에 진학한 형님의 뒷바라지 하느라 논 40마지기(8000평)를 모두 팔아야 했다. 집만 남아있을 정도로 빈털터리가 됐다. 이런 요인이 겹치면서 매일 술에 찌들어 살면서 폐인이나 다름 없었다. 곧 죽게 될 정도의 상황에서 해창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려 '떠밀리듯이' 참석했다. 목사님이 '특수한 사명을 받은 거 같다. 신학교에 가면 병도 낫게 될 것'이라며 신학대학교를 추천해주셨다. 전혀 생각지도 못하게 서른세 살에 신학대에 입학하게 됐다."

▲ 교회 예배당 1층은 26년간 양로시설로 운영됐다. 2년 전 중단됐지만 간판은 여전히 남아있다.
▲ 교회 예배당 1층은 26년간 양로시설로 운영됐다. 2년 전 중단됐지만 간판은 여전히 남아있다.

- 목회를 시작하면서 양로시설을 운영했는데.

"신학대에서 목회학을 공부하면서 복지를 전공했다. 노인들의 돌봄 사역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부모 이상 세대가 얼마나 힘든 삶을 살았는지 곁에서 지켜보고 뼈저리게 느꼈다. 농촌의 어려운 노인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졸업하자마자 귀향해 아버지 소유의 땅에 '소망 노인의 쉼터'라는 양로시설을 지었다. 93년 당시 해남에는 노인시설이 전혀 없었다. 26년간 양로시설을 운영하다가 2년 전 중단했다. 여러 양로원이 생겨나면서 입소할 노인들이 더 이상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요양원이 일종의 소득사업이지만 26년간 사명감으로 했다."

- 농사일도 병행하고 있는데.

"20여 명에 달하는 양로시설 노인들의 의식주를 책임져야 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식량을 해결하기 위해 벼농사를 했다. 17살 때부터 농사를 지었고 4H 활동도 하면서 농사 지식과 경험은 많았다. 고천암 간척지 3000평을 분양받아 벼농사를 시작해 지금은 1만평(50마지기)에 달한다, 주변에서 농사를 더 짓도록 권유해 늘어나게 됐다. 경운기, 이앙기, 트랙터를 갖추고 모든 농사일을 한다.

- 이장은 왜 하게 됐는지.

"농촌이 이미 초고령사회이다. 수림마을은 35가구에 주민이 60여 명이다. 5년 전 귀농한 40살 문턱의 부부를 빼면 50대 나이의 주민도 없다. 이 분이 나중에 이장을 해야 한다. 60대는 젊은 층에 속한다. 그 분들도 100~200마지기에 달하는 논농사로 바빠 이장을 할 시간이 없다. 올해로 7년째 이장직을 수행하고 있는데, 젊은 사람이 없어 자연스럽게 이장으로 '추대'됐다."(올해 초부터 삼산 마을이장을 대표하는 이장단장도 맡고 있다.

- 이장을 하면서 힘든 점과 바람이 있다면.

"이장은 봉사하는 자리이다. 종자 구입이나 하우스시설 보조사업 등 마을 일을 일일이 챙겨야 하는 심부름꾼이다. 마을 숙원사업이 해결되거나 어르신들이 수고했다는 격려의 말을 해줄 때 보람을 느낀다. 해남에는 500명이 넘는 이장들이 일선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분들에게 좀더 처우를 개선해주고 걸맞은 신분 보장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올해 처음으로 삼산 이장단장을 맡았다. 이장단도 시대가 요구하는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주민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끊임없이 제공해야 한다."

- 농촌에서 목회 활동의 현실은.

"마을 주민들 대상으로 한 목회 활동이다. 노인들이 신도이기 때문에 '양로원 교회'이다. 목사가 신도들을 실어나르는 승합차 기사 역할도 해야 한다. 사실 헌금도 적어 교회 운영이 어렵고 힘들 수밖에 없다. 젊은 층과 주일학교도 있어야 신앙생활도 활발해지는 데 그렇지 못하다."

- 농촌 목회가 나아갈 방향은.

"교회 내에서 뿐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어르신들을 아우르는 통합목회로 가야 한다. 교회의 틀에서 벗어나 어르신을 돌보는 실천적 목회로 전환돼야 한다는 의미이다. 고령자들은 모두가 주위의 돌봄이 필요하고 교회가 그 역할을 어느정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목사, 농부, 이장 중 가장 힘든 분야는.

"목회와 이장 업무 모두 봉사이다. 올해로 28년째인 목회 활동이 아무래도 가장 힘들다. 정신 노동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에 새긴 게 있다. 우리는 부모 세대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오늘의 풍요는 그분들의 희생과 눈물이 바탕에 깔려있다. 이를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