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거섭(해남군농민회 정책실장)

 
 

LH(한국토지주택공사) 농지투기 사태로 온 나라가 야단법석이다. 농지문제는 그동안 농민들과 농민단체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 수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농지이용실태에 대한 전수조사를 요구해 왔다. 2006년 직불금 수급자 100만명 중에 비농민(부정수급자)이 28만명에 달했다. 현재 직불금 총액이 2조4000억원에 가까우니 약 7000억원을 농민이 아닌 사람이 받은 것이다. 이뿐이겠는가. 전체농지 중에 비농민이 소유한 농지가 57%이고, 농민의 60%가 소작농인 현실에서는 밝혀진 것보다 더 많은 부정수급자가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농촌에서는 농민들이 소유한 농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많은 농민들이 남의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고 있다. 나 또한 임대농지가 대부분인데, 한때 논과 밭을 포함해 30ha에 이르는 농지를 임대해서 농사를 지었으나 지금은 12ha의 농사를 짓고 있다. 이마저도 밭농사는 2ha로 줄었다.

우리 지역에서 농민들이 농지를 임대하기가 어려워진 주된 원인은 영농조합으로 위장한 기획부동산(가짜 영농조합)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짜 영농조합들은 정부가 추진하는 개발 예정지에 주로 많이 만들어진다. 이런 기획부동산은 이명박이 대통령을 할 때 농업에 자본유입을 유도한다면서 영농조합과 농업회사법인의 설립요건을 완화하면서 생겨나게 되었다. 비농민도 농업회사법인이나 영농조합을 만들 수 있게 길을 열어준 것이다.

가짜 영농조합은 투자자들을 모집하거나 농지를 구입할 의사가 있는 비농민들에게 비싼 값에 판다.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지주는 가짜 영농조합이 내 땅을 얼마에 팔든 상관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주는 시세보다 높은 가격만 받으면 그만인 것이다. 가짜 영농조합은 땅값에 거품을 붙여 많은 이득을 챙기고 거래가 성사된 농지 대부분이 외지인 비농민들이 소유하게 된다. 가짜 영농조합은 비농민인 외지인들이 소유한 농지를 관리까지 하게 되면서 진짜 농민들에게 임대를 하거나 우량농지는 직접 농사를 지어 수십만 평의 농지를 경영하는 등 일석삼조의 소득을 얻고 있다.

LH 직원들의 농지투기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농지를 투기 대상으로 바라보는 인식은 공직자와 정치인,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폭넓게 형성돼 있는 것이 현실이다. 비농민들의 농지 투기로 땅값이 오르고 농민들은 어려운 살림에 농사지을 땅을 구입할 엄두를 못 낸다. 땅값이 오르니 임대료도 오른다. 농사지을 농지가 부족해지면서 농민들 간의 농지 임대경쟁이 벌어지고 농민들 간의 임대경쟁은 농촌사회에 갈등을 유발하고 인심도 각박해지는 상황으로 만들고 있다.

농지는 일반적인 개념의 국토와는 다르다. 농지는 식량 생산기능 외에도 경관보전과 수자원 함양, 생물다양성 유지, 농촌사회 유지, 국토 균형발전,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게 휴식공간 제공 등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하고 있다. 농지는 공공재의 성격을 강하게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헌법에 경자유전의 원칙을 명시하고 농지법에서 소작을 금하고 있다. 그러나 경자유전의 원칙을 명시하는 헌법과 달리, 실제로는 농사를 짓지 않는 비농민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한 예외 조항이 모든 문제의 핵심이다. 농지법 제6조 '농지소유제한'에서 농사를 짓지 않음에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10가지 예외 경우를 두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의 분별없는 신재쟁에너지 정책이 농지법을 더욱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국회에서는 2018년 말 간척농지에 태양광 발전설비를 건설할 수 있게 농지법을 개정한 데 이어, 2019년 9월에는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농업진흥구역에까지 태양광발전소 설치를 허용하자는 개정안을 내 농민단체들로부터 극심한 반발을 샀다. 이뿐인가. 김승남 의원이 대표 발의한 영농형 태양광 역시 농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더 이상 공적 자산인 농지를 사익을 추구하는 투기 대상이 되도록 앞장서지 말아야 한다. 식량 자급을 위한 목표를 세우고, 농지법 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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