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춘(법무법인 클라스 대표 변호사)

 
 

1993년 저명한 문화계 인사의 저서를 통하여 내 고향 해남과 이웃 강진이 남도의 첫손 꼽 히는 문화유산 지역으로 소개된 것을 보고 나 자신이 고향 주변에 얼마나 무심하였는지 각성하게 되었다. 그 저서의 서두에 인용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선대 문인의 문구는 그 시절 인구에 회자되었던 것으로 기억되고, 사물을 보는 자세를 가다듬는 데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마침, 재경 법원에서 4년 근무하면 지방의 법원에서 2년 정도 근무 후 다시 재경 법원으로 복귀하는 법관 경향교류 인사원칙에 따라 제주지방법원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향토의 아름다움에 눈을 뜨며 여행과 답사의 묘미를 느끼기 시작하던 참이라 우리 지역의 명소를 찾아보기 시작하였다. 남단에 있는 미황사는 그렇더라도 대흥사조차도 그 이후에야 비로소 처음 방문하였음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고백한다. 대흥사 하면 천불전, 초의선사의 일지암 등에 관한 이야기가 많지만 나로서는 어느 늦은 가을에 보았던 너부내 윗목 호젓한 곳의 단풍나무에서 본 그 고운 붉은 빛이 생생하다. 다른 유명사찰과 달리 일찍이 사하촌이 잘 정리되어 이제는 경내로 들어가는 가깝지 않은 길이 정갈하고 소슬한 숲길인 것도 정말 좋다.

대흥사와 그 일원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대흥사 진입로 초입의 피안교 다리 아래에 있는 유선관이다. 원래 대흥사를 찾는 수도승이나 방문객의 숙소로 지어졌으나 1970년대부터 일반인들도 묵어갈 수 있게 된 이래 전통 한옥여관으로 명성이 높았던 곳이다. 위 책은 유선관보다도 투숙객의 산행 길잡이를 영민하게 잘하였던 노랑이 이야기를 더 많이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유선관이 얼마나 특별한 곳인지는 다언이 필요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도 건강과 행복의 추구를 삶의 중심으로 삼기 시작한 지 이미 오래다. 자연스럽게 여행과 휴양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게 되었다. 현대화된 고급 리조트 시설을 찾는 경우가 흔하지만 한편으로 대중을 멀리하여 더 호젓하고 자연에 가까운 안식처를 찾는 경향도 깊어져 가고 있다. 소규모의 객실만을 갖추었으면서도 특별한 휴식에 대한 욕구를 충족해 줄 수 있을만한 장소와 분위기를 추구하는 명소들이 여러 곳에 생겨나기도 한다.

추사 김정희와 원교 이광사의 숨결이 묻어 있고 임권택 감독이 촬영장소로 사랑한 유선관은 모든 면에서, 특히 품어 내려오는 이야기에서 그렇게 새로 생겨나는 곳들과 비할 바가 아니다. 다만 뒤편의 고즈넉한 숲과 함께 아름다운 한옥과 정갈한 밥상에 매료되면서도 정작 숙박하기에는 불편함이 많은 점이 늘 아쉬웠다. 최근에는 운영 자체가 중단되어 전통 한옥여관으로서의 유선관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몰랐다.

그러한 유선관이 5월 재개장을 위해 환골탈태하고 있다. 조경에 대한 식견이 높고 문화, 예술에 대한 애정이 깊은 해남 출신의 한동인 대표께서 유선관을 이 시대에 맞는 안식과 휴양의 명소로 재탄생시키기 위하여 열정을 쏟고 있다. 너부내와 울창한 뒷 숲이 있는 천혜의 경관을 십분 활용하여 전체적인 조경을 재단장하고 객실 또한 유숙에 전혀 불편하지 않도록 전면 개조하는 공사를 수개월 전부터 해오고 있다. 기둥과 보, 지붕만 그대로 두고 기와부터 내부 객실 구조와 시설까지 모두 새로 바꾸고 고쳐 겉은 전통한옥이나 안은 최신 호텔과 같은 객실로 되는 것이다. 한 대표의 문화, 예술에 대한 사랑은 안마당을 주변과 잘 어울리게 조성하여 예인들의 공연장소로 함으로써 새로 개장한 유선관은 이 지역을 대표하고 남도문화를 상징할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이 되도록 하겠다는 꿈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다시 우리의 유선관은 100년이 넘은 유서와 함께 문화유산을 탐방하며 역사와 지역 문화를 알아가고, 가치 있는 삶의 의미를 돌아보는 안식의 명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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