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장과 군수'(2007년 개봉)는 사사건건 맞서는 군수와 이장의 이야기를 해학적으로 그려냈다. 초등학교 시절 단골 반장을 지낸 노총각 조춘삼(차승원 분)은 얼떨결에 최연소 마을 이장에 선출되고, 만년 부반장만 하던 이대규(유해진 분)는 최연소 군수에 당선된다. 20년 만에 인생이 역전된 두 사람이 다시 만나면서 '딴지걸기'가 시작된다.

대규는 어린 시절 당한 기억에 '군수 감투'의 생색을 더 내고, 춘삼은 자존심을 못 버리고 맞서기만 한다. 방사성 폐기물 유치 문제로 대규가 군수직을 사퇴하면서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게 된다. 이 영화는 마을 이장의 역할에 대한 접근보다는 뒤바뀐 운명을 그린 코미디물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이장직을 각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

이 영화는 김두관 국회의원을 모델로 삼았다는 얘기도 있다. 그는 이장과 군수를 다 해본 사람이다. 경남 남해에서 29살의 나이에 마을 이장을 하고, 7년 후 남해군수에 당선돼 두 차례 역임했다. 민선 최연소(36세) 군수의 기록은 지금도 유효하다. 경남도지사,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장관도 지냈으니 '어공'(어쩌다 공무원)으로서 행정업무의 뿌리에서 맨 꼭대기까지 올라간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장의 입지와 처우가 나아진 데에는 이장 경력을 가진 그의 역할이 크다.

마을 이장은 기초적인 행정 보조, 재난·재해시 업무지원, 봉사활동, 그리고 주민 불편사항을 모아 건의하는 역할을 한다. 풀뿌리 주민자치의 중심축으로 마을 발전의 책임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11급 공무원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칭도 붙는다.

해남에는 515개 마을(행정리)에 이장이 있다. 그 많은 이장 가운데 일부의 일탈을 해남신문은 몇 차례 지면에 담아냈다. 이장 선출과정에서 불거진 주민 간 갈등을 짚었다. 이런 상황에서 해남군은 '이장 임명에 관한 규칙'을 개정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10년 만에 이뤄지는 규칙개정은 그동안 이장의 임무나 권한 등에서 많은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14개 읍면별 이장을 대표하는 이장단장들이 얼마 전 해남신문을 찾아 이장에 대한 잘못된 시각이라며 한목소리로 지적하고 나섰다. 지극히 일부 이장의 일탈행위를 마치 대부분이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편화시켜 도매금으로 폄훼한다는 것이다. 또한 군의회에서 제기된 보조사업 문제도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언론이 지역갈등 조장이 아닌 조정역할을 해줄 것을 주문했다. 최일선에서 행정업무를 주민들에게 전달하지만 "준공무원이라는 말이 제일 듣기 싫다"고도 했다.

일선에서 묵묵히 봉사하는 이장단의 이런 주장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이장들은 마을 대표로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 자치시대가 본격화되면서 마을 이장의 역할과 범위도 더 넓어지고 있다. 그러면서 봉사자로서 마을의 화합과 발전을 책임지는 이장에 대한 기대도 높아져 간다. 이장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만큼 더 많은 책임감도 뒤따른다. 해남에는 이장을 대표하는 이장단장으로 이뤄진 협의회가 꾸려져 있다. 비단 해남 뿐 아니라 전국에서 일부 이장의 일탈행위가 간간이 도마에 오른다. 협의회는 읍면의 현안과 애로사항을 전달하고 해결하는 창구역할을 한다. 나아가 주민간 갈등이 있는 마을을 찾아 화합하고 발전하도록 돕는 역할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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