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호(농부)

 
 

서울서 귀농한 지 어언 8년여가 지나고 있다. 그동안 맞닥뜨린 가장 큰 어려움을 꼽으라면 흔히들 먹고사는 문제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차별' 의식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 지금도 진행 중이다. 외지인이라는 딱지와 함께 따라다니는 차별들이 참 많다.

텃새, 계절과 상관없이 한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새. 반대말은 철새. 당선을 목적으로 이 당 저 당으로 당적을 수시로 옮기는 정치인을 철새라고도 한다. 시골에 뼈를 묻고자 온 이는 철새가 아닐 터이다. 덧붙여 미생이라고도 놀린다. 언제인가는 떠날 사람이라고 한다.

외지인들, 현지인들, 두 말 모두 차별적 언어다. 사업상 만나는 관계도 아닌 바에야 이런 용어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지역사회에 도움이 될 리 없다. 일마다 텃새 개념으로 구분하는 이들의 시선이 한사코 거두지 못하는 의구심. 저 양반, 일 좀 하다 가버리겠지 하는 그런 배신감 같은 것 말이다. 사람 나름이다. 그런 사람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공연히 모든 이들을 같이 뭉뚱그려서 한 묶음으로 보는 시선은 교정됐으면 한다.

차별적 시선을 받으러 시골로 찾아온 것이 아니고 새로운 삶을 살려고 왔다. 도시에서는 절대 누릴 수 없는 삶, 농부로서의 삶이다. 자연이 주는 혜택을 온전히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매일 쫓기듯 사는 삶이 아닌, 비록 가진 것은 적어도, 사는 곳은 초가삼간이어도 여유로운 만족감을 얻는 삶, 돈으로 짜낸 삶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흐르는 삶, 분노로 뭉뚱그려져서 친구조차도 적으로 대하는 순간이 많았던 그 도시의 정글을 벗어나 따뜻한 바보가 많은 농촌 말이다.

시골에 와서 여러 친구들과 아우들을 얻었다. 따뜻한 선배들도 만났다. 참 인간미 넘치는 분들이다. 때론 이해할 수 없는 분노로 술자리 끝에 폭발하는 이들도 보았지만 다 이해할만한 과거들이 있다. 꾸밈없이 대하는 이들 앞에서 일부러 아는 척할 필요도, 거만할 필요도 없는, 인간적으로 쉽게 가까워질 수 있는 그들에겐 나의 숨 가쁜 과거나 그 과거 속에서 씻을 수 없는 아픈 자국은 얼룩으로도 남지 않았다.

가벼운 듯하지만, 위트 넘치는 농담 속에서 주고받는 담소는 늘 주취가 없는 술좌석 같다. 그렇게 적응할 필요도 없이 녹아든 시골살이가 가끔은 난데없는 곳에서 덜컹거린다. 저 사람이 누군데 저 일을 하는 것이지, 저 사람은 어디서 온 사람이지, 이렇게 구분한 말은 화살보다 빠르게 가슴에 박힌다. 그 차별적 언어는 무인 철책선 같은 경계선이 되고 무언가 함께 도모하는 길의 걸림돌이 된다. 더욱이 공동체의 길 위에서는 칼날이 된다.

같이 일을 하자 해놓고 출신을 따지는, 어찌 보면 일보다 사람이 우선인 듯이 보이지만, 마치 인간의 자유를 절절하게 말하는 백인의 말속에서 진정한 그 자유는 흑인 빼고 오로지 백인만을 위한 자유와 같은 차별이다. 백인만 인간인 세상처럼. 토박이만 인간은 아니다. 사업이 먼저가 아닌 사람이 먼저인 지당한 말 앞에서 부끄러운 인간 차별의 경계선은 지워져야 한다.

어찌 보면 서울 사람에게 시골 사람은 물질 앞에 순박한 사람으로 보인다. 시골 사람에게 서울 사람은 인생 앞에 야박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순박함도 야박함도 사람 나름이고 모두 어우러져 삶을 이루고 있다. 시골은 서로 마음먹기에 따라서 공동체가 수월하게 가능하다. 인구밀도가 높은 곳일수록 더불어 살기가 아이러니하게도 더 어렵다. 인구가 많을수록 그 연대감은 복잡해서 함께하기 어렵다. 하루도 안 빠지고 부대끼는 곳에서는 인간적 공동체가 살기 어렵다.

사람을 한 마디로 줄이면 삶이다. 시골의 삶은 차별 없이 더불어 사는 따뜻함이다. 그래서 도시를 떠나 희망을 품고 귀농한다. 삶은 차별 받기에 너무 짧고 혼자 살기엔 너무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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