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이 1년 동안 소비하는 김이 100억 장에 달한다고 한다. 한 사람이 200장꼴로 먹는 것을 보면 가히 국민반찬이라 할 수 있다.

김의 역사는 유구하다. 13세기 말 삼국유사에는 바다에서 채취한 김으로 추정되는 해조류 이야기가 나오고, 15세기 경상도지리지에 김의 옛 이름인 해의(海衣)에 대한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김 양식의 시작은 세계 최초인 17세기로 알려진다. 영암 출신인 김여익(1606~1660)이 광양 태인동 아기섬(지금 광양제철소 부지)에서 대나무나 나무가지를 갯벌에 꽂아 포자가 자생하도록 하는 방법의 김 양식을 했다는 것이다.

대나무 발을 깊은 바다에 세워 양식하는 보다 진전된 방식은 100여 년 전 완도에서 시작된 것으로 해태양식론(1953년 발간)에 적혀있다. 조선 인조가 수라상에 오른 진상품을 맛본 후 마땅한 이름이 없다는 말을 듣고 김씨 성을 따서 부르도록 했다는 김의 명칭에 대한 유래도 전해진다.

우리나라에 뿌리를 둔 김은 이제 중국,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주요 식품 반열에 올랐다. 김 수출 규모는 2019년 수산물 가운데 참치를 제치고 1위에 오른 데 이어 지난해에도 6억 달러를 넘겨 수위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모든 수산 식품의 수출액이 줄었지만 김은 나홀로 늘어나면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김은 섭씨 5~8도의 수온에서 가장 잘 자란다. 4도 아래로 떨어지거나 12~13도가 되면 성장이 멈춘다. 그래서 겨울을 앞두고 포자가 자라기 시작해 10월에서 4월이나 5월 초까지 수확된다. 생산지도 바다 수온이 점차 상승하면서 경기도까지 올라갔으나, 그래도 전남은 우리나라 김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전남에서도 해남과 고흥, 진도가 김 주산지이다.

해남에서는 637명의 어민이 연간 8만톤 정도의 물김을 생산해 780억원의 수입을 낸다. 김 양식 면적도 9607ha(19만2000여책)에 달한다. 최근에는 전남 생산량의 30% 정도를 차지하며 고흥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몸값이 뛰고 있는 곱창김은 독보적이다.

여기에다 전국에서 유통되는 마른김은 30%가 해남의 가공공장에서 만들어진다. 해남은 김 가공산업의 메카인 셈이다. 올해 말 땅끝해남식품특화단지에 들어서는 수산식품산업 거점단지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 해남김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그동안 저평가된 해남김이 품질에 걸맞는 대접을 받게 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기대도 나온다.

다만 만호해역(마로해역) 김 양식을 두고 벌이는 해남과 진도 어민들간의 싸움이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분쟁이 되는 양식장은 1370ha. 이는 해남 전체 김 양식장의 14%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최근 법원의 1심 판결에서 해남어민들이 패소했으나 재판은 대법원까지 이어질 것이다. 해남군은 지금의 해상경계가 부당하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도 청구했다. 만호해역 김 양식장은 해남 어민들이 개척해 40년 가까이 삶의 터전으로 삼아왔다. 어업권 유지는 생존이 걸린 문제이다.

솔로몬의 지혜가 담긴 판결이 구약성경(열왕기상 3:16~28)에 전해진다. 두 계집이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자기 아들이라며 왕에게 판결을 구했다. 그러자 솔로몬은 산 아들을 둘로 나눠 반씩 주라고 했다. 한 계집이 "나누게 하라"고 한 반면, 다른 계집은 "아들을 저 여인에게 주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라고 했다. 솔로몬은 '죽이지 말라고 하는 계집이 어미'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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