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승(전 전남평생교육진흥원장)

 
 

고향 모습이 예전 같지 않은 지는 오래다. 온 동네에 가득했던 웃음소리와 활기도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아이들은 사라졌고, 노인들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코로나 이동 자제로 인해 올 설은 더 외롭고 쓸쓸했다.

수년 전부터 '지방소멸'을 경고하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지방소멸은 일본 이와테현 지사와 총무장관을 지낸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가 2014년 발표한 책에서 처음으로 제시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당시의 추세가 계속되면 일본 자치단체 900여 개가 사라진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일본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그렇다면 도쿄와 같은 대도시는 다를까. 그렇지 않다. 지방의 공동화는 대도시의 노령화와 재생산 감소라는 악순환으로 연결돼 역시 쇠락의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고 그는 진단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안타깝지만 지방소멸 개념의 원조격인 일본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지난해 기준 지방소멸 위기에 빠진 곳은 전국 시군구 228개 중 절반에 가까운 100여 군데. 전남 도내 지방소멸 위험 시군은 22개 시군 중 18개. 물론 해남군도 여기 포함돼있다. (인구소멸위험지수는 65세 이상 인구 대비 20~39세 여성의 비율. 0.5 이하면 인구소멸 위험 지역이다.)

지방소멸의 속도도 가공할 수준이다. 전남처럼 농어촌지역에 국한되지도 않는다. 인구가 밀집한 경기도 군 단위 지역도 소멸지역에 포함돼있다. 지방소멸의 가장 큰 이유는 인구 감소다. 지난해 출생자 수는 27만여 명, 사망자 수는 30만명을 넘었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인구 데드크로스'(dead cross)에 들어선 것이다. 전남도의 경우 지난 5년 동안 완도군 인구 정도인 5만2365명이 줄었고, 해남군도 전체 인구의 8.4%인 6315명이 줄었다.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의 '인구감소 캘린더'는 2059년 총인구를 4000만명 미만으로, 2076년에는 2973만명, 2100년에는 1748만명으로 예상했다. 80년 뒤에는 인구가 3분의 1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격세지감이지만 해방 이후 정부 정책 중 가족계획은 가장 성공한 정책으로 꼽혔다. 문제는 정책 전환의 시점을 놓쳤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감소세로 전환된 1980년대 후반. 노태우 정권 당시 보사부장관을 지낸 한 인사는 "인구가 현상유지수준인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 2.1 이하로 떨어진 지 수 년이 지났는데도 정부 정책은 그대로였다"로 회고했다. 그는 당장 가족계획 정책 중단을 지시했지만, 여론은 차가웠다. 금쪽같은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갔다.

전통적 인구론의 관점에서 보면 인구 감소가 긍정적 의미를 갖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땅덩어리가 작고 자원이 빈약한 나라에서는 인구가 줄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그러나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인구 감소가 국가 쇠망과 연결된 케이스는 역사 속에 수없이 많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란 책으로 유명한 미국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는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우리 시대의 문제만이 아니라, 번영을 누렸던 많은 국가가 경험한 공통 현상이라고 주장했다.

스파르타는 그리스 최고의 강국이었지만 순혈주의와 출산율 저하로 인구의 80%가 줄어들면서 멸망했다. 로마 역시 줄어든 인구를 대신해 게르만족을 용병으로 받아들였다가 결국 게르만에 의해 멸망했다.

지금 보궐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들이 저마다 출산장려를 위한 현금 살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실소가 나올 정도다. 현금을 준다고 해서 출산율이 높아진다는 결론은 너무나 단순하다. 더 이상 시간이 없다.

늦었지만 '지방소멸위기지원특별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출산과 보육에 대한 거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실질적인 지방분권도 이뤄져야 한다. 순혈주의가 강한 우리나라의 국제 이주에 관한 국민적 공감대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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