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 주현진(시인 겸 수필가)

 
 

옛 어르신들께서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을 자주 하신다. 특히 추석이나 설 명절 또는 조상 제사 모실 때 차례상을 준비하는데 자식들이 나타나지 않고 노령의 두 부부가 차례를 준비할 때는 품 안의 자식이 생각난다. 2남 2녀의 4남매를 두고 있는 우리 부부도 차례 준비를 둘이서 한다.

올해 설날 차례를 어떻게 준비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얼마 전 '설날 차례상 배달해 드립니다'는 내용의 전단 광고를 전달받았다. 폐백 음식점이 차례 음식도 만든다고 한다. 생각보다 비싸지 않아 관계자에게 물어봤더니 음식량이 딱 상에 올릴 정도여서 그렇다는 대답이다.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식사하려면 추가 비용이 꽤 든다고 한다. 하지만 음식으로선 별 인기가 없어서인지 그런 집은 많지 않다는 귀띔이다. 대신 명절이면 온 식구가 패밀리레스토랑에 들어가 외식을 즐기는 걸 '가문의 전통'으로 삼는 집안이 많다고 한다.

'명절' 하면 젊은 층은 피자, 파스타, 스테이크를 떠올릴 것 같다. 물론 차례상에 올리는 나물류로 만든 헛제삿밥이란 관광음식도 있지만 젊은 입맛까지 사로잡기엔 역부족인 듯하다. 배달해 주는 음식의 원산지를 물었더니 그런 것 따지려면 더 비싼 집을 알아보란다. 하긴 가격 문제로 차례상이 수입농산물 전시장이 된 지도 이미 오래니까,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에 조상님 받으시는 차례상이 오염될까 봐 근해에서 잡은 어패류 대신 캐나다산 바닷가재에 태국산 새우를 올려놓은 집은 없으려나.

그러고 보니 명절 풍속 중에 조용히 사라진 게 한둘이 아니다. 20여 년 전까지는 차례를 지내고 나면 반합에 차례 음식을 종류별로 조금씩 담아 이웃집에 보내 나눠 먹곤 했다. 우리 집안은 차례상에 절대 닭을 올리지 않았지만 이웃 집에서는 늘 닭다리를 보내와 은근히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그 집안 아이들은 우리 집에서 보내는 새우전을 고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서로 문 꼭꼭 걸어 놓고 사는 아파트 생활을 하게 되면서 유네스코 등재감인 이 공동체 풍습은 조용히 '단종'됐다. 목욕탕에서 모르는 사람끼리도 서로 등을 밀어주던 미풍양속처럼 말이다.

설이 다가오면 옷은 물론 신발까지 새로 사는 설빔 풍습도 사라질 위기이다. 어린 시절 가슴 설레며 설빔을 기다렸던 기억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이다.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데 이보다 더 좋은 풍습이 또 있을까 싶다.

요즘 아이들은 나중에 무엇으로 명절을 추억할까? 대신 요즘 명절에 신 3금이란 게 생겼다고 한다. 친척이 모인 자리에서 진학, 취직, 결혼 이야기를 일절 입에 올리지 않는 에티켓이다.

"참, 지난해 재수한다더니 어디로 갔지?", "오랜만이야, 요즘 어디 다녀?", "다 컸구나, 사귀는 사람은 있어?" 등등 무심코 꺼낸 인사말이 상대에겐 '상처 후비기'가 될 수 있어서다.

덕담은 악담(?)이 되고, 상투적 덕담이 듣기 싫어 친척 만나기를 꺼리는 경우도 생긴다. 설날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자랑 늘어놓는 것'으로 나타났다.

좋은 말만 건네도 각박한 세상살이에 힘 빠지기 십상이다. 으레 주고받는 덕담이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명절 날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지간 아무 생각없이 건넨 말이 누군가를 더 힘들고 불편하게 할 수 있다. 습관적으로 내뱉기 전에 정말 상대를 위하는 진심이 담긴 말인지, 힘이 되고 기쁨을 주는 말인지 가다듬는 지혜가 필요하다. 추석이나 설날엔 말은 딱 반으로 줄이고 대신 미소와 덕담은 두 배로 날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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