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인기(본사 대표이사)

 
 

입춘이 지나고 이제 일주일 있으면 설이다. 해남 곳곳에는 '애들아 코로나 보내지 말고 용돈만 보내거라', '아그들아 효도하러 오면 불효자식 된께∼ 오지 말그라'라는 부모님 일동 명의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설날에는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조부모, 부모님께 세배한 후 동네 어르신들을 찾아 새해 인사를 드리면 집집마다 떡과 과일 등을 대접받고 세뱃돈도 받았다. 그때의 기쁨이 추억 속에 아른거린다. 떡국 한 사발에 나이 한 살 더 먹으면서 한 해의 행운을 비는 아름다운 미풍양속이었다.

지난 수십 년간 각자도생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흩어져 살 수밖에 없는 형편에서 세시풍속이 변해오다 전 지구적 팬데믹 코로나 사태로 올해 설날 풍속도는 완전히 달라질 것 같다.

이번 설에는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한 방역 대책으로 집합금지가 유지되면서 동거가족이 아니면 가족도 5인 이상은 모일 수 없고 이를 위반하면 과태료까지 내야 한다. 온 가족이 함께 모이면 10명이 훨씬 넘어 올해 고향 방문은 매우 난감하다고 한다. 어느 시민은 태어난 지 두 달 된 아이를 양가 부모가 보고 싶어 하고, 어느 직장인은 결혼 뒤 첫 명절이라 부모님께 인사해야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 해남은 노령인구가 많은 초고령사회다. 나이 들어 고독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명절이면 자식과 손자손녀 보는 재미가 쏠쏠한데 이번 설 명절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하는 아쉬움에서 내려오면 불효이니 용돈만 보내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설 명절에 고향과 부모를 찾아 함께하는 것은 낳고 기르신 부모님에 대한 효도의 기본이자 중심이다. 코로나로부터 부모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귀성 금지'가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한 조치로써 어쩔 수 없다면 오가진 못하더라도 조상에 대한 공경심과 부모자식간 정을 더욱 두텁게 해야 한다. 먼저 더욱 뜨겁고 정겨운 존경의 마음을 평상시에 주고 받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효도도 평상심의 결과물일 수 있다.

민주국가에서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하게 살 권리를 가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서서히 사람과 생명의 가치는 무시되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하나의 수단이자 방편에 불과한 돈이 최고라는 물질만능풍조에 빠져 있다. 돈이 사람들 마음의 안방을 차지하고 있다. 그 결과 잘 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을 나누는 불평등과 양극화 현상이 심해졌다.

세상이 이렇다 해도 우리는 사람 중심의 가치를 세우고 경쟁과 대립보다는 서로 돕는 상생과 배려의 삶 속에서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에서 보듯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거리두기로 가족과 친구들을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니 사람이 더욱 그리워지고 우울증 등 정신적 질환도 심각해지고 있다.

어느 시인의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는 시에서 느끼듯 하찮게 보이는 자연과 생물들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통해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

설 명절 가족 모임과 생명 유지의 근간인 농업이 중심인 해남의 경제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항상 같이 사는 군민 모두가 서로 자식손자와 부모가 되고 가까운 이웃이 되는 상생과 배려 속에 희망의 해남공동체를 만들어 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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