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수분은 재물이 끝없이 나오는 상상 속의 보물단지이다. 다소 생소한 이 말은 진시황 시대의 설화 '하수분'(河水盆·황하 물을 담은 그릇)에서 나왔다. 만리장성을 쌓을 때 거대한 동이(물통)를 만든 뒤 황하의 물을 길어다 채워넣고 썼다. 물통이 어찌나 큰지 담긴 물을 아무리 사용해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여기서 비롯된 말이 우리나라에서 화수분으로 바뀌게 되었다.

화수분을 얻고자 하는 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설화나 민담, 전설로 내려온다. 아라비안나이트(천일야화·千一夜話)에 나오는 '알라딘과 요술램프'나 이솝우화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 등이 화수분을 설정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화수분이 내려온다. 흥부전이나 혹부리 영감, 화수분 바가지 등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바탕에는 벼락부자에 대한 소망이 깔려 있다.

화수분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지만, 이를 과학과 접목해 실현하고자 했던 게 바로 연금술(鍊金術)이다. 서양에서는 주로 금을 만드는 데 주력한 반면, 중국이나 인도 등 동양에서는 질병을 치료하거나 죽지 않은 영약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유럽에서는 납이나 구리 같은 비금속(卑金屬)을 섞거나 화학적 결합을 통해 금이나 은으로 바꾸려는 시도가 많았다. 연금술사의 이런 성과가 모여 화학의 기초가 되었다. 화학을 뜻하는 영어 단어(chemistry)가 연금술(alchemy)에서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17세기 무렵 유럽에서 금을 만들었다고 했으나, 나중에 가짜로 밝혀지기도 했다. 공장에서 물건 찍어내듯이 진짜 금이 만들어졌다면 지금쯤 금값은 똥값이 됐을 것이다.

금(Au)이라는 무거운 원소가 생성되려면 섭씨 1조도 정도의 초고온과 초고압이 필요하다고 한다. 1조도의 온도는 태양 표면온도(섭씨 5500도)보다 2억배 가까이 뜨겁다. 이 정도의 초고온과 초고압은 중성자별의 충돌 과정에서나 생겨난다. 그래서 지구에서 금을 만들어내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다. 태양에서도 섭씨 1000만도 정도 되는 내부 온도와 고압의 조건에서 수소를 융합시켜 헬륨을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발생된다. 지구의 모든 생물체는 이 에너지로 살아간다. 수소폭탄이 이 원리를 적용한 것.

얼마 전, 자영업자의 손실보상제 법제화를 두고 홍남기 기획재정부장관(경제부총리)이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보다 이틀 앞서 기재부 1차관은 "법제화한 나라는 찾기 힘들다"라고 말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이 발언을 듣고 "이 나라가 기재부 나라냐"고 격노했다고 한다. 기재부의 말을 좋게 해석하면 '곳간지기'로서 국가 빚에 대한 뒷감당을 우려한 것이다. 나쁘게 말하면 나랏돈은 우리가 주무르고 있는데 '어디서 콩 심어라, 팥 심어라' 하느냐는 것이다. (사실 기재부의 위세는 대단하다. 김대중 정부 이전만 하더라도 호남의 시장·군수들이 예산을 따내기 위해 당시 재정경제원의 사무관 만나기도 어려웠다. 인사만 하고 와도 다행이었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옛말이 있다. 이 속담은 요즘 시대에는 맞지 않다. 정부가 방역 목적으로 영업금지·제한을 해 자영업자들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맞지 않다. 나랏돈은 이럴 때 써야 한다. 그게 헌법정신에도 맞다. 이젠 코로나19라는 재앙에 맞서 나라가 적극적으로 구제에 나서야 한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