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미(전남대 교수)

 
 

해남의 수성리 군청 뒤 우리집 기와지붕을 찾으러 나섰다. 어릴 적 다니던 좁은 골목을 찾지 못하여 자동차로 같은 길을 세 번이나 왕복하였다. 조금 움직인 듯했는데도 금세 동네 끝이 나와 버려 오던 길을 되돌아간 것이다.

결국 군청 옆에 차를 세워둔 채 걸어가서야 변해버린 마을길 속 과거를 더듬으며 찾아냈다. 어릴 적 대궐 같던 우리집 기와지붕은 신축 건물에 묻혀 아주 작아 보였다. 친구들과 어울려 달리며 누비던 그 길던 골목길은 마치 소인국에 온 듯 몇 걸음에 끝나버렸다. 키 작은 내가 훌쩍 커버린 것이다.

우슬재를 지나 해남읍에 들어서면 산 높은 곳의 형제바위를 올려다보곤 한다. 초등학교 시절에 동네 애들과 함께 딱 한 번 올랐던 곳이다. 몇 년 전 올랐던 히말라야 고산보다도 더 높은 산처럼 기억하는 산이다. 삐비(삘기의 방언) 뽑고 쑥 캐며 놀았던 뒷산 마당바위는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지만 남겨둘까 싶다. 세상에서 제일 넓은 바위인 줄 알고 놀았던 추억의 장소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서이다. 긴 세월 속에도 자연은 그대로이건만 추억 속 우리 동네가 소인국마냥 작아져 버렸다. 키가 큰 만큼 마음도 훌쩍 커져서 유년의 추억까지 모두 품고 살아서인 것 같다.

미국 시애틀에서 한국 식당가를 들른 적이 있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색적인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70년대 영화 포스터를 보는 듯한 글씨체와 또순이, 호순이, 물레방아 등 가게 이름 또한 인상적이었다. 요즘 한글은 세련된 폰트가 많다며 간판만 바꿔도 손님이 늘어날거라며 마치 신문물이라도 접하고 돌아온 사람처럼 조언해주었다. 그런데 되돌아온 설명은 의외였다. 오래 전 고국을 떠나 이민 오신 분들에겐 그 세련되지 못한 옛 간판 하나가 고향이고 단골을 만든다는 것이다. 고향을 떠나 살아본 사람들에겐 긴 설명이 더 이상 필요 없는 대답이었다.

길을 가다가 간판에 적힌 고향 이름이 우연히 눈에 들어올 때 과연 눈길이 멈추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살면서 가장 반가운 단어라면 부모와 형제자매, 그리고 고향 이름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쉽게 손 내밀 수 없는 사회로 변해갔고, 우리들 마음까지 닫히는 듯해 안타깝기만 하다. 90세가 넘으신 부친의 생신날마저도 고향집에 내려가질 못했다. 노령인구가 높은지라 동네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며 외지에 사는 자식들은 오지 말라는 부모님의 당부 때문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제한을 핑계로 휴일에라도 쉬거라 하는 부모님의 자식 사랑인 것도 알지만, 코로나19 감염으로부터 청정 해남을 사수하느라 애써오신 분들의 노력과 수고에 피해를 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는 곳, 그리고 유년시절 추억이 깃든 곳은 회상만으로도 지친 우리에게 긴 호흡을 하게 한다. 대한민국 지도 맨 아래에 작게 동그라미 치던 땅끝에서 나오는 생산물과 해남을 지키는 사람들은 내적 자원이다. 고향에 발 딛고서 멀리 팔 뻗었을 때 기꺼이 손을 맞잡아주는 반가운 사람들은 외적 자원이다. 내 고장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자원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상황으로 막연한 채 손에 잡히지 않았던 4차 산업혁명 시대는 훨씬 빠르게 우리의 생활 속에 들어와 있다. 생계로든 체험으로든 온라인 시스템을 자주 접하고 다루면서 땅끝이되 세계로 뻗을 수 있으며 혼자이되 함께 만들어내는 경험을 하고 있다.

2020년을 '해남 방문의 해'로 선포하였으나 전 세계의 코로나19 사태로 해남의 문을 활짝 열 수가 없었다. 긴 시간 동안 나들이도 맘껏 하지 못한 채 억눌린 사람들의 여행 갈증은 마치 스피링 튀듯 분출할 것이다. 매력 있는 해남에서 풀고 맞이할 수 있도록 차별화된 문화관광사업의 탄탄한 준비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맘껏 숨을 내쉬고 손 내밀 수 있을 새해에는 '사람이 힘이다'라는 기본을 되새길 정성스런 해였으면 한다. 해남을 지키는 분들과 그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사람들 한 분 한 분을 홍보대사로 활용할 네트워크 구축은 가슴으로 뛰어야 하는 일이다. 손은 서로 함께 내밀어야 잡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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