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평호(농부)

 
 

세상이 험악할수록 막말이 난무한다. 막말, 막하는 말이다. 욕설도 이에 포함된다. 상대의 인격은커녕 기본 예의도 저버린 표현을 말한다. 주변에서 이런 막말을 자주 보게 된다. 정치권의 오염된 막말이 일상에 파고든 지 오래다. 화가 나서 막말을 하는 경우는 이해 가능할 수도 있으나 막말을 하는 사람의 수준은 이미 폭로된 것이다.

막말은 아니지만, 하대(下待)함은 상대를 낮추어 대하고 반말하는 것이니, 본인은 의식하지 않아도 듣는 이의 마음에 썩 좋은 말이 아닌 경우는 언어폭력이 될 수도 있다. '반말'은 말 그대로 예의가 사라졌으니 말이 완성되지 않은 것이다. 대화에서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반말함은 자기 말만 하는 일방적 소통이자, 말이 완성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예의 없는 자세이다.

'말을 놓는다' 혹은 '허물없이 대한다'는 취지로 반말하지만, 공과 사는 엄격히 구분해둠이 필요하다. 사적으로 대부분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라서 반말을 자연스럽게 쓴다. 지역 사회에서는 학교 선후배, 심지어는 군대 선후배 사이로 기준을 두고 반말을 쓰는 경우가 많다. 이는 순전히 사적인 관계이다. 그리고 상호 편한 관계를 상징한다.

그러나 공적인 영역에서 하대함은 상대를 존중하지 않음을 뜻한다. 상대를 낮추어 부름으로써 자신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다고 착각하는 몹쓸 자세이다. 상대를 낮춤은 덩달아 자신도 낮아짐을 모르는, 자기 얼굴에 침 뱉기임을 모르는 반지성적인 표현이다.

시골에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공적 장소에서 반말을 대할 때, 반말에 익숙하지 않은 필자에게는 당황스러운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면사무소나 농협에 일을 보러 갈 경우 항상 들리는 반말. 면장, 농협 조합장에게 혹은 면 직원 등에게 반말을 하는 이를 바라볼 때, 처음에는 화가 나서 저러나 싶었다. 심지어는 학교 교장, 스님이나 목사에게도 반말하는 모습은 이해 불가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반말 가지고 누군가와 시비가 붙었을 때는 더욱 황당하다. 왜 반말을 쓰냐면서 너 몇 살이냐, 어디 사냐 등으로 시비를 하는 경우, 자신은 반말 듣기 싫어하면서 상대에게는 함부로 반말을 쓰는 모순임을 모른다.

면사무소, 농협 뿐만 아니라 사찰, 교회, 성당 등도 공적인 장소이며, 공적인 대화가 필요한 회의, 모임 등에서는 지극히 예의를 갖추어 상대를 대함이 필요하다. 그래야 공과 사가 구분되며, 함부로 사람을 대하는 경우가 사라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공적인 영역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반말하는 사람은 일상이 막 가는 사람과 같다. 하대, 반말은 막말의 시작이고, 상대를 깔보는 모습이며, 자기 얼굴에 스스로가 반말하는 자기 부정이다.

관공서 외의 공적인 영역은 자신이 정하기 나름이다. 가정도 그렇다. 부부 사이에 하는 반말, 생각해 볼 일이다. 부부가 서로 존댓말을 쓰는 가정은 사회의 모범이다. 자녀에게도 깍듯이 존댓말을 써주는 부모, 참 찾기 힘들지만 정말 아름다운 모습이다. 아내와 자식을 높여주는 존댓말, 가정의 품격이 한층 높아지고 가족 간 사랑이 깊어진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한 철학자가 있다. 언어가 삶의 기본 틀이라는 말이다. 예의를 갖추는 언어야말로 정성을 다하는 대화의 시작이자 일상의 예법을 실천하는 것이다. 높임말을 쓰면 자신이 낮추어지고, 반말을 하면 자신이 높아진다는 엉터리 망상을 벗어야 한다. 상대를 높여주는 자세는 겸손한 자의 힘이고, 상대를 존중하는 언어는 자신의 인간다움을 멋지게 표현하는 지성이다.

올해부터 모든 관공서와 공공기관에서 반말하지 말고 존댓말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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