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개석 역사학자(마산면 거주)

 
 

해가 바뀌게 되면 지난 해 미진했던 일을 돌아보고, 새해에 이루고 싶은 일을 생각하며, 새롭게 다짐한다. 섣달 그믐과 새해 초하루가 큰 차이가 없지만 해가 가기 전 한 해 동안의 성과를 반성하고, 다시 새해 아침에 새로운 달력을 걸고, 새로운 소망을 품고, 소박하지만 새로 시작한 일에서 대박을 꿈꾼다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2020년은 미증유의 환란을 만나 우리 해남군민 중에도 미리 세워둔 1년의 계획이 몽땅 물거품으로 날아간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필자도 우즈베키스탄의 몽골제국시대 유적지 답사와 백두대간 탐사단을 따라 케이투(K-2) 봉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하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지만, 갑작스레 덮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모든 것을 접고 뒷산 무진봉과 달마고도를 걷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페스트나 콜레라, 독감과 같은 역병(疫病)은 동서고금에 걸쳐 유행하였고, 인류에게는 전쟁에 못지않은 참화를 안겼다. 그렇지만 의학의 수준이 낮았던 고대나 중세에도 길어야 10여 년, 짧으면 2년 이내에 종식되었다.

기원전 5세기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간 아테네 인구의 3분의 1을 앗아간 페스트의 유행기간이 비교적 기나, 2세기 말 중국(東漢)에서 약 1000만의 인명을 앗아간 독감이 12년, 14세기 중엽 유럽을 급습한 페스트와 20세기 초 전 세계를 강타한 스페인 독감이 2000만명 넘는 사망자를 냈지만, 각각 3년과 2년 안에 종식되었다.

지난 1년 코로나19로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 나온 사망자 숫자도, 역사상 이름난 역병과 비교하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다. 발달한 의학과 의료체계의 덕택이다. 다행히 코로나19 바이러스 예방백신의 사용이 승인되어 환자가 특히 많은 미국과 영국, 그리고 이유(EU) 국가들과 일부 부자 나라들이 접종에 들어갔다. 우리나라도 조만간 치료제가 나올 전망이어서, 코로나19 감염증의 종식이 눈앞에 보인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 인구 75억의 1%가 넘는 8000만 명 이상을 감염시켰다고 해도, 2021년이 가기 전에 극복될 길이 과학의 힘으로 열릴 것이라 필자는 믿고 있다. 오히려 팬데믹 공포에 사로잡혀 많은 사람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증에 빠진 것이 큰 문제이다.

누군가에게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그동안 살아온 날들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스스로를 성숙시키는 기회가 되었다고 하지만, 가까운 앞일을 장담할 수 없는 노인들조차 하릴없이 상황이 개선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힘차게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과 한창 일할 나이의 청장년들에게, 자유로운 활동을 제약하는 코로나19 상황이 끝날 때까지 그저 참고 기다리게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종식된 후 열릴 새로운 미래를, 쫓기지 않고 알차게 준비할 수 있도록 황금같이 귀중한 여분의 시간이 주어졌다고 거꾸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

요컨대 의학이 발달한 21세기 인류에게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극복할 수 없는 큰 재앙은 아니다.

2021년 새해는 우선 코로나19 감염병의 유행을 따라 우리 국민에게 만연된 공포와 무기력증을 극복하고, 코로나19 감염병 상황이 종식된 이후 다시 찾게 될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한 해로 삼자. 무엇이 되었든 새해는 새로운 시작에 대비하여 준비하고 , 만들고, 이루어내는 시간으로 충당하자.

이러한 시간이 필자를 포함한 해남군민을 새해가 가기 전에 참된 의미의 대박(大樸)으로 안내한다면 더 바랄 나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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