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려 12년 전 소의 해(己丑年) 벽두인 2009년 1월 15일,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개봉됐다. 메가폰을 잡은 이충렬 감독은 영암에서 농사짓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영감을 얻었다. 워낭은 소나 말의 목에 달아놓은 방울.

다큐멘터리 형식의 이 영화는 사람과 소의 아름다운 동행을 애잔하게 그려냈다. 경북 봉화의 최원균 할아버지는 10년 된 누렁이라는 소와 인연을 맺은 후 30년째 들녘에서 함께 일하며 동고동락해온다. 소의 수명은 보통 15년 정도 되는데, 누렁이는 40년을 살고 있다. 날마다 아픈 다리를 끌고 소가 먹을 꼴을 베고,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 쇠죽을 끓인다. 할아버지는 귀가 어두워도 워낭소리에는 눈이 번쩍 뜨인다. 소를 위해 논과 밭에 농약 한 번 하지 않는다. 이삼순 할머니는 이런 할아버지와 소에 대한 원망 섞인 잔소리를 해댄다. 늙어 죽은 소를 평생 일하던 밭 한가운데 묻어주고, 들녘에 하염없이 앉아 있는 할아버지의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난다.

할아버지는 소와 이별한 후 5년여 만에, 할머니는 홀로 된 지 6년 만에 세상을 떠난다. 영화 촬영 무대인 할아버지 집도 할머니 타계 후 한 달 만에 불이나 잿더미가 된다. 노인과 소의 진한 사랑을 그린 '워낭소리'는 당시 독립영화 사상 최대인 300만 명 가까운 관객을 끌어들였다. 홍보비를 포함해 1억8000만 원의 제작비를 들여 100배 이상인 19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대박을 냈다. 저예산의 독립영화는 상업자본을 끌어들이지 않고, 흥행(장사)을 겨냥한 시나리오에 연연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 부문에서 독립된 것.

올해는 소의 해인 신축년(辛丑年). 소는 힘든 농사일을 트랙터에 내주기 이전에 농가의 재산목록 1호였다. 70~80년대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고도 했다. 소 팔아 마련한 등록금으로 건물을 지은 대학을 빗댄 말이다.

소는 개와 함께 가장 오래된 가축이다. 8000년 전 서남아시아와 인도에서 가축으로 길들여졌다. 우리 조상은 2000년 전부터 소의 노동력을 빌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때부터 한 식구로 생각하고 소중하게 여겼다.

소의 소중함과 근면, 충직함은 여러 속담으로 내려온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소가 말이 없어도 열두 가지 덕이 있다', '소같이 벌어서 쥐같이 먹어라', '느릿느릿(드문드문) 걸어도 황소걸음', '쟁기질 못하는 놈이 소 탓 한다', '빈 집에 소 들어간다'.

소가 사람의 삶에 얼마나 깊숙이 녹아 있고 친근한지 보여주는 속담도 수 백가지 된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 '낮짝이 소가죽보다 더 두껍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황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는다' 등등.

해남에 소와 얽힌 고개가 있다. 옥천에서 해남읍으로 넘어오는 우슬재(牛膝峙)는 소가 무릎을 꿇고 있는 형상이라고 해 붙여진 지명이다. 일화에 따르면 조선시대 해남에 고관이 많았는데 새로 부임한 현감이 이들의 기를 꺾기 위해 산을 깎아서 생겨난 고개라고 한다.

우보(牛步)는 느리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내딛는 소의 걸음이다. 이런 우직함과 성실함이 십이지 가운데 두 번째를 꿰차게 했다. 소는 인내심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소처럼 참고 견디며 1년 가까이 코로나19에 빼앗겼던 일상을 되찾는 '소의 해'가 되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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