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희(주부)

 
 

"집에서도 재밌게 노네."

남편의 말이다.

'영어그림책 읽은 어른들'이라는 동아리 모임을 마치고 방문을 열었는데 마침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나가는 남편과 마주쳤다.

"다 했어?"

"뭘?"

"학교 수업 동영상 만들었잖아."

"아닌데. 줌으로 동아리 모임했는데…."

방에서 내 목소리만 들리니까 비대면으로 해야 하는 수업을 준비하는 줄 알고 숨죽여 있었던 것이 억울했을까?

동아리 모임했다는 소리에 남편이 던진 말이다.

"집에서도 재밌게 노네."

코로나는 이전 콘택트의 생활을 사람들의 만남을 지양하는 언택트로 바꾸더니 이제는 온라인으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온택트의 삶으로 바꿨다. 그동안 들어보지도 못한 언택트니, 온택트니 하는 신조어를 창출하면서 말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300일 넘게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아니 이 전쟁이 끝이나 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야 한다. 살아 나가야 한다. 살아가는 방법과 처지가 다 같을 수는 없으니 이러한 불행한 시절에도 불공평이, 또 불공정이 뒤따른다.

강의 나가는 대학이 1학기 전 수업을 비대면으로 실시하면서 가장 먼저 봉착한 난관은 그 방법이었다. 그 전에도 가상강좌는 있었으나 그런 것에는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았던 콘택트의 삶을 살았으니 무엇을 떠올릴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살아야 했기에 옆 사람들을 흘깃흘깃 쳐다보며 쫓아갔다. 그리고 2학기는 줌이라는 화상을 영접(?)할 수 있었다. 그나마 운이 좋아서.

그러나 남편은 텔레비전도 없는 집에서 300일 넘게 지속된 코로나 시절을 살아내고 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소파에 누워 휴대폰으로 만화를 보는 것이 그의 유일한 오락거리다. 즐겨하던 독서도 노안이 오면서 그만두었고 유일하게 읽는 활자 매체는 신문이다. 그나마 이마저도 운이 좋은 편일까…. 집에 오면 사람 소리는 들을 수 있으니.

농촌엔 독거노인들이 많다. 콘택트 시절에는 오전 새참 무렵 동네회관으로 마실 나가서 사람 소리도 듣고 따뜻한 점심 한 끼 든든히 먹고 해질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또 마을회관이 폐쇄되고 이제는 차디찬 부엌에서 김치 담은 찬기 하나 달랑 놓고 국에 말은 밥을 허겁지겁 먹어 치울 게다. 보일러를 켜지 않은 방에 온기라고는 전기장판 위 한 평. 그 위에서 지난 시절의 영상만 틀어주는 텔레비전을 혼자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일 게다. 전국노래자랑의 사회자, 송해의 오래 전 목소리가 유일하게 듣는 사람 소리일까 두렵다.

브라이언 페이건의 책 '기후는 역사를 어떻게 만들었을까'를 읽다가 '이상하게도 극단적인 기후 변동이 주는 상처를 인간은 너무 빨리 잊는다'는 구절이 오랫동안 마음에 머무른다. 지금처럼 언택트하며 온택트하는 삶에 익숙해져서 주위에 콘택트했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을까봐 두렵다. 콘택트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잊을까 더 두렵다.

재건축을 앞둔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다세대 주택에서 죽은 지 5개월 만에 발견된 엄마와 그 사이 노숙자가 된 발달장애 아들에 대한 기사를 오랫동안 읽었다.

수원에서 혼자 살고 계시는 친정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은 긴 통화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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