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의 역설이라는 게 있다. 온난화가 진행되는 데 겨울에는 오히려 더 추워지는 현상을 이르는 말이다. 지구 중위도를 한 바퀴 도는 편서풍(서쪽에서 동쪽으로 일정하게 부는 띠 모양의 바람)인 제트기류는 북극의 찬 공기가 남하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종의 방어선 역할을 한다.

근데 북극의 기온이 올라가면 제트기류의 세력이 약해져 밀려나게 되고, 그러면서 찬 공기가 남하해 한파가 기승을 부리게 된다. 2004년 우리나라에도 개봉된 '투모로우'(원제는 The day after Tomorrow, 직역하면 모레이지만 영화에서는 가까운 시일 내 다가올 수 있는 날을 의미한다)가 지구온난화의 역설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온난화에 따른 급격한 기후변화로 북반구에 빙하기가 찾아온다는 재난영화이다.

이번 주는 첫 눈이 내리는가 싶더니 강한 바람과 함께 영하 7도 안팎의 매서운 추위가 해남을 지배했다. 땅끝까지 밀려온 이번 한파는 지구온난화를 발판 삼아 시베리아 찬 공기가 급격히 내려온 때문으로 기상학자들은 진단한다. 이번에 내린 가루눈(분설·粉雪)은 '눈발이 잘면 춥다'는 속담을 딱 들어맞게 했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흔히 '동장군'(冬將軍)이라고 한다. 이 말의 유래는 여러 설이 있다. 가장 유력한 게 80만 대군을 앞세운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1812년)에서 찾는다. 프랑스가 러시아의 눈과 혹한을 못 이기고 많은 병사를 잃은 채 패배하자 영국 언론이 '제너럴 프로스트'(General Frost·육군 장군의 서리나 추위)라고 표현하고, 이를 일본이 동장군으로 번역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지어낸 게 확실한 것으로 보이지만, 임진왜란에서 비롯됐다는 얘기도 있다. 일본에서도 가장 따뜻한 지역인 규슈(九州) 출신으로 편성된 한 갈래의 왜군이 한겨울 혹한이 몰아닥친 함경도 진격의 임무를 받았다.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에 밀린 당시 왜군 장수 가토 기요마사가 후퇴하면서 "조선에는 동장군이라는 또 다른 장군이 있구나"라고 했다는 것.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인 땅끝 해남은 온화한 해양성기후로 살아가는 데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한겨울에도 평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해남에는 월동배추라는 이름의 겨울배추가 80년대부터 재배되기 시작해 지금은 전국 최대의 겨울배추 생산지가 되었다.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1~2월에 수확하는 겨울배추 재배 지역도 점차 북상 중이지만, 해풍과 황토를 배경으로 자란 해남겨울배추(지리적표시 제11호)는 앞으로도 그 명성을 이어갈 것이다. 다만 지구온난화의 역설이 해남의 겨울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쉽사리 예측하기 어렵다.

해남읍 매일시장이 자리한 해남천 홍교에서 120m 정도 상류에 유신교라는 다리가 있다. 다리 밑 주변 물속에는 피라미, 송사리로 보이는 물고기 수 백 마리가 떼 지어 서식한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관리하지 않아도 이 곳을 지나면서 '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큰 어항인 셈이다. 어느 때인가 제법 큰 덩치의 물고기가 하나같이 사라졌다. 수달의 먹잇감이 되었는지, 아니면 자연사 했는지 그 원인을 알지 못해 여전히 궁금증으로 남아있다. 최근 닥친 한파가 아침저녁으로 이 곳에 살얼음을 만들어낸다. 그래도 여전히 수 백 마리의 어린 물고기 떼가 더 따스한 다리 밑에 몰려있다. 줄어든 수량과 엄동설한을 어떻게 이겨낼지 걱정이 앞선다. 별 탈 없는 겨울나기로 해남천을 지키는 명물로 계속해서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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