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금 (사)가정을건강하게하는 시민의모임 이사장

 
 

"김장은 하셨어요?"

월동을 준비하기 위한 첫 번째 행사가 김장이었던 시절 날씨가 추워질 때 나눴던 인사말인데, 요즘은 나이 든 여자들 사이에서나 건네는 말이 되었다. 이웃과 품앗이로 100포기 넘게 담그는 김장은 겨우내 많은 가족의 밥상을 책임지는 중요한 반찬이었다. 김장은 배추김치를 담그는 것이 중심이고 동치미, 백김치, 총각김치 등도 빠질 수 없다.

우리의 김치 종류는 매우 다양해서, 재료가 나는 철에 따라 갓김치, 파김치, 열무김치, 고들빼기김치, 부추김치를 담기도 한다. 거의 모든 야채들을 김치로 담글 수 있다. 김치 이름은 대부분 재료에 따라 붙이며 깍두기, 석박지, 나박김치처럼 주재료를 써는 방법에 따라 붙이기도 한다.

올해 해남은 이번 주 전후를 김장의 적기로 보는 듯하다. 김치는 기본적인 재료가 같아도 지역에 따라 김치에 넣는 젓갈이나 부재료 등이 다르다. 각 가정에서 담그는 김치의 종류나 맛이 서로 다르면서도 각각 그 지역 사람들의 공통적인 취향과 입맛을 만족시키는 배경이다. 또 이것이 우리나라를 김치의 종주국으로 만드는 힘이다. 우리의 김치문화는 김치의 다양한 재료의 배합과 사람들의 다양한 입맛과 취향이 오랜 역사 속에서 발효되어 형성된 생활문화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 일본의 한 대학에 방문학자로 머물던 시절, 장아찌(쯔께모노)를 소개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열심히 본 적이 있다. 농가의 한 주부가 30여 년간 무장아찌를 담그면서 남긴 기록을 소개했는데, 이 주부는 해마다 장아찌를 담글 때 들어간 무의 상태, 쌀겨의 농도, 숙성기간, 꺼내서 먹을 때의 맛 등을 빠짐없이 기록해 놓고 있었다. 여러 지방의 각 가정에서 제철의 야채를 재료로 다양한 맛의 장아찌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것을 보고, 필자는 많은 나라에서 장아찌를 먹지만 '일본이야말로 장아찌 문화의 나라'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농경사회 문화인 김장하는 일은 길고 고된 과정을 필요로 한다. 겨울이 오기 전에 심어서 늦봄에 캔 마늘과 뜨거운 여름 볕을 쬐어 익은 고추가 필요하다. 가을에 키우는 무, 배추 등도 모두 긴 시간을 기다려 거둔다. 젓갈 역시 멸치나 새우, 황석어 등 제철에 나는 것을 젓을 담가 두었다가 늦가을 김장에 사용한다.

그러나 김장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재료는 맛있는 배추이고, 이 배추를 잘 절이는 것이다. 시댁인 산막리에서, 지금은 간척지가 되어 벼농사를 짓고 있지만, 바닷물이 동네 앞까지 들고 나던 시절에 바닷물로 배추를 절였다는 말을 듣고 감탄했던 적이 있다. 많은 양의 배추를 알맞게 절이는 일은 과정이 까다롭고, 많은 시간과 넓은 장소가 필요한 일이라, 아파트에서는 어려운 일이다. 해남의 절임배추가 전국 각지의 가정에서 환영받는 이유이고, 도시 가정의 필요를 잘 파악한 절임서비스로 농가는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김치는 발효식품으로 건강에도 좋고, 최근에는 한류의 바람을 타고 많은 외국사람들도 관심을 갖고 있으며, 김장문화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대표적인 한국의 생활문화이다. 그러나 가족 수가 줄고, 김치를 먹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집에서 김장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 어려운 환경에서도 생활문화로서 김장문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 특히 공장에서 한 가지 맛으로 대량 생산되고, 중국 등에서 수입되는 김치가 음식점에 넘쳐나고 가정의 식탁까지 차지한 오늘날, 각 가정의 다양한 김치맛이 살아있는 김치문화가 얼마나 더 유지되고 계승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김치문화가 발전하고 계승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즐겨먹고 김치를 먹는 사람의 다양한 입맛이 생활문화로 김치맛에 녹아있어야 한다. 이제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맞추어, 보관의 문제를 김치냉장고로 해결한 것처럼, 김치문화의 보존과 계승방안도 생각해 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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