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률(교사, 시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공정을 논하지 말라. 공정을 기울어진 상태에서 수평상태처럼 적용하는 것은 참 뻔뻔하다. 국가대표와 시골 초등학생을 같은 출발선에서 달리게 하는 것이 기회균등인가? 한마디로 '엿먹어라~'가 아닌가? 시골 고교생과 강남 고교생을 같은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재용이나 나경원이나 조국의 자식들과 강원도 산골이나 전라도 시골의 청년을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하라는 것은 공정한가? 그들의 할아버지 찬스나 부모 찬스를 시골 고등학생도 받을 수 있는가? 돌려주마, "엿이나 드세요."

이쯤에서 한 가지 제안하고 싶다.

'서울을 피곤한 동네로 만들자.' 수도권 사람에게 역차별은 당연시 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역이 사라진다. 지역이 사라지면 결국 수도권이라고 온전할 것 같은가? 이 나라는? 다 폭망한다.

현재 대부분의 권력과 문화와 이권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음을 직시하자. 수도권의 빨대를 제거하고, 독과점 기회를 분산하자. 공정을 다시 생각하자. 누구는 그런다. '왜 지역에서 기회를 찾지 못하냐?'고. 되받아 주고 싶다. 단맛을 다 차지한 악어의 눈물에 침을 뱉으마.

파레토법칙을 아는가? 사회학자 빌프레도 파레토가 '이탈리아 인구의 20%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하고 있다'는 분석에 근거한다. 지금 우리 사회를 보라. 그 정도면 감지덕지다. 이미 5대 95의 사회가 아닌가? 이런 불평등의 사회에서 '똑같은 기회'가 공정의 기준이 될 수 있는가?

존 롤스는 차등의 법칙에서 '평등한 기회보장'을 주장한다. 또 이런 주장들은 차고 넘친다. 수정자본주의를 거쳐 복지자본주의에 이르는 동안 공정한 기회균등을 얘기하고 있지만 이런 주장들이 자본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학위를 따려는 일부 지식층에게 밥벌이나 제공하고 있음도 알아야 한다. 속절없는 논리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사회 소수자들에게 극히 일부의 수혜를 베풀어 주자는 논리가 그들이 말하는 공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불평등의 사회에서 '너희들의 던져준 떡고물'에 고마워할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이런 주장들은 한 발 더 나아가 권력 소유자들의 '역차별'에 대한 반박을 인정하는 꼴이다.

대부분을 가진 자가 공정한 기회에 접근하는 작은 제도 개선을 역차별이라 떠들며, 더 큰 격차를 벌리고자 집단적 권력 횡포를 일삼는데 이것을 인정해야 하는가? 조금의 나눔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극단적 욕망의 표출이다. 나는 그들의 반박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 동안 빼앗은 권력을 이용해 더 많은 것들을 빼앗으며, 더 많은 혜택을 누리고자 한다. 이제 그 혜택을 독점하겠다는 심뽀가 역력하다. 이런데도 작은 떡고물도 고마워하고 그들의 터무니없는 욕심을 인정해줘야 하는가? (국회의원 박광온에 의하면, '30-50클럽 국가의 수도권 집중도 현황' 자료에서 우리나라는 GDP의 51.8%, 일자리의 49.7%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이는 주요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30-50클럽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의 수도권 집중도는 2위인 일본과 비교해도 격차가 매우 컸다. 일본은 GDP 33.1%, 일자리 30.8%가, 이어 프랑스(GDP 31.2%, 일자리 22.8%), 영국(GDP 23.6%, 일자리 17.0%), 이탈리아(GDP 11.2%, 일자리 10.6%), 독일(GDP 4.4%, 일자리 4.5%), 미국(0.7 2%, 일자리 0.5%) 순으로 나타났다.

경제 측면에서만 보아도 이 지경인데 수도권의 폭력을 인정해주자는 건가?

아서라, 말아라. 한 가지 촉구한다. 올해 수도권 인구는 전체인구의 50%다. 심각한 일이지만 좋다, 인정하자.

그렇다면 모든 기회 비율을 수도권 대 비수도권 으로 나눴을 때 50:50으로 정하자. 채용도 수도권 소속을 50으로 한정하고, 하다못해 공연도 '수도권에서 한 번 하면 지역에서도 한 번'으로 못을 박자.

그래도 역차별하지 말라고? 그러다 다 망한다.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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