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흘이 지나면 달력도 마지막 한 장만 덩그러니 남는다. 바야흐로 12월이다. 연말이면 여러 가지 일로 어려움이 많다는 의미에서 '다사다난'(多事多難)이라는 수식어가 으레 붙는다. 올 한해는 코로나19라는 역병이 모든 걸 집어삼켜버린 블랙홀이 되었다. 단 하나, 코로나로 인해 숱한 고난이 파생되면서 '일사다난'(一事多難)의 한 해로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직장인에게 '연말' 하면 송년회, 그리고 술자리가 떠오른다. 예전 이런 회식자리에서는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분위기를 띄운다는 미명 아래 나온 단골메뉴가 '와이담'(음담패설)이다. 일본말 '와이단'(わいだん·猥談·술자리에서 함부로 떠드는 말)에서 나온 '와이담'은 요즘 시대에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자칫 성 희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고품격이 스민 야한 유머가 있다.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1874~1965)은 임기응변의 유머로 '순간'을 넘겼다. 총리를 그만 둘 무렵인 70대 후반, 그는 바지 지퍼가 내려온 줄 모르고 연회장에 들어섰다. 야당 여성의원이 "남대문이 열렸다"라며 핀잔을 주자 "죽은 새는 새장 문을 열어놔도 밖으로 날아가지 않는다"고 응수했다. 의회에서 민간기업의 국유화가 쟁점이 됐을 때 이야기이다. 처칠이 소변을 보러간 화장실에 야당인 노동당수가 '일'을 보고 있자 멀찍이 떨어진 변기로 다가갔다. 야당 당수가 "왜 나를 멀리 하냐"고 하자 "당신은 큰 것만 보면 국유화하자고 하니까"라고 맞받아친다.

'와이담'이 사라진 요즘 회식에서 건배사가 그 자리를 꿰찬다. 건배(乾杯)는 '잔을 비운다'는 뜻이다. '원샷'이다. 건배사는 주로 참석자들의 단결을 도모하는 의식이다. 대개 돌아가며 한 번쯤 하게 되고, 한두 개 정도는 준비해야 한다.

송년회에 자주 등장하는 건배사가 있다. '사이다'(사랑하자, 이 세상, 다 바쳐), '당나귀'(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 '통통통'(의사소통, 운수대통, 만사형통), '신대방'(신년에는 대박 맞고 방긋 웃자), '당신멋져'(당당하고 신나고 멋지게 살자, 져주면서도 살자), '명품백'(명퇴조심, 품위유지, 백수방지) 등등. 이런 '위하여~'의 후창과 달리, 선창과 후창이 이어지는 건배사도 있다. '술잔은 비우고/마음은 채우고', '이멤버/리멤버'(이 멤버를 기억하자), '일파/만파'(한 명이 파이팅 하면 만 명이 파이팅 한다) 등이 그 것이다.

코로나19가 송년회장 입구에서 저승사자처럼 버티고 있는 형국이다. 요즘 감염의 온상이 바로 음식점과 술집이다. 마스크 쓰고 먹고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정부 차원에서 연말 모임을 최대한 자제해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공직사회,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사실상 송년회 금지령을 내린 셈이다. 일반 직장인이나 개인도 연말 모임을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연말 특수를 기대했던 자영업자들은 또다시 직격탄을 맞게 됐다.

송년회는 지나가는 해를 뒤돌아보고 다가오는 해를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맞이하는 모임이다. 그렇다면 꼭 먹고 마셔야만 뜻있는 송년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송년회가 없어도 해는 넘어간다. 자칫 몸과 돈만 버리기 십상이 '망(亡)년회'를 비켜가게 돼 차라리 다행이다.

쥐띠 경자년(庚子年)을 옴짝달싹 못하게 한 코로나19라는 환란을 떨쳐 보내고, '하얀 소의 해'인 신축년(辛丑年)에는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게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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