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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리, 그곳에 가고 싶다주현진(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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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20  09: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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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난 지 40여년이 지났건만 해송림이 울창하고 툭 트인 바다가 있는 고향 산천이 그립다.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기온과 한껏 높아진 파랗고 티 없이 맑은 하늘, 애처러운 듯 은은히 밀려오는 귀뚜라미의 가냘픈 운율과 이끼 낀 화분에 가득 피어올라 향기를 뿜어내는 국화 꽃송이들이 더욱 가을임을 실감케 하며 고향의 정을 안겨준다.

화려한 네온사인. 답답한 도시공간. 꽉 짜여진 생활패턴. 요란한 소음. 공해. 이런 것들과는 동 떨어진 아담한 마을. 아직도 시골 내음이 물씬 풍기는 자그마한 시골.

동쪽에도 북쪽에도 작은 축구장만한 약간 경사진 잔디마당이 있고 그 주위로 200~300년이 됨직한 노송들이 울창한 솔숲을 이루고 있는 땅끝마을 송호리. 그곳에 나는 가고 싶다.

녹음기 테이프처럼 반복되어지는 마을 숲의 새고리가 우선은 어릴 적 나의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내가 태어난 그곳은 그다지 크지도 않고 어느 집에 누구누구가 산다는 것을 모두 알 정도로 훈훈한 인정이 넘치는 마을로 길가엔 어느 소설속의 전경처럼 가냘픈 코스모스가 한들거리고 플라타너스 잎사귀들은 클레오파트라의 화려함으로 도도하게 자리잡고 있다.

우리 집엔 가보처럼 이어오는 맷돌이 있었다. 세탁기가 없어도 좋았다. 맨들한 돌에 맑고 깨끗한 시냇물이 있었다. 이렇게 편안함을 주는 스위치 시대의 믹서기, 냉장고, TV 등은 때로는 인간적 이질감을 느끼게 하고 때로는 사고에 대한 불안감을 안겨주지만 맷돌이나 시냇물은 내가 갈등과 방황에 처해 있을 때 나의 마음을 세척해 주고 가지런히 정리해주는, 그리하여 나를 가르치는 스승이기도 했었다.

논과 밭 사이로 난 꼬불꼬불한 논두렁길, 손으로 주물러 야트막하게 쌓아 올린 돌담집, 아낙네들의 투박한 말소리에서 정겨움을 느낀다.

무더운 한 여름날 마당 한 가운데 방석을 깔아놓고 아이스크림 대신 수수깡을 벗겨먹다 손을 베이면 호랑이가 하늘에서 수수밭으로 떨어져서 피가 묻었다는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 그 어린 시절 꽁꽁 언 논에서 손을 호호 불면서 신나게 얼음치기 하던 모습들이 어제 일처럼 내 머리에 스친다.

지금은 주름진 내 모습만큼이나 많이도 퇴색해버린 듯한 고향의 모습이지만 그러나 아직도 그곳에는 도시의 각박함과 생존경쟁에 아우성치는 소리로 들리지 않았고, 아직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후덕한 인심, 진정 평안한 삶의 안식처이고 보금자리이며 시골의 채취를 읽을 수 있는 내 고향이다.

유유히 떼 지어 날으는 새들의 원무, 그리고 기울어 가는 어령도 위의 해와 함께 어우러져 불타는 저녁노을, 그리고 생사의 온갖 거북스러운 것들이 잠들 때 누가 이런 고향의 아름다운 현상들을 싫다 하겠는가?

이제는 정녕 우리 곁에서 깊어가는 내 고향 가을의 속삭임을 느끼며 생활이란 굴레 속에서. 또한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오늘을 도피하듯 무심한 날들을 보냈던 지난날들을 반성해 보면서 못다 이룬 나의 작은 소망들을 되새기며 나 자신과의 독백을 밤새도록 그려 보련다.

저토록 청명하고 잔잔한 고향바다에 자그마한 돌 하나 던지며 실같은 잔물결이 수없이, 그리고 끝없이 퍼져만 갈 듯한 고향 바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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