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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농민, 농민이여황은희(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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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20  09: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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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 어느 마을에 살고 있는 박 씨는 거의 1000만원 어치의 생강종자를 올 봄에 파종했다. 짚을 덮어주고 김도 서너 번 맸다. 그나마 큰 동네이고 박 씨가 농기계 품을 팔 수 있어서 일손을 구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수확은 한꺼번에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

된서리를 두어 차례 맞아 생강 이파리가 누렇게 내려앉으니 사람을 구하느라 입이 바짝 타들어갔다. 어렵게 외국인 노동자를 구하고 동네 늙은 아짐들에게는 사정을 했다.

그래서 이틀 동안 걷은 생강이 1톤 조금 넘는데 인건비가 180만원 가량 들었다. 추수한 생강은 1킬로그램 당 4000원에 수매를 봤다. 혼자 사는 강 씨는 비슷한 양을 심어 6톤을 수확했지만 일꾼들 나흘치 밥값과 인건비로만 500만원이 들어갔다고 했다. 남편이 생강 캐는 날, 다니러온 박 씨의 웃는 얼굴은 차라리 슬퍼보였다.

그 날의 일을 마치고 동네 정자에 둘러앉아, 남은 안주에 쓴 소주를 들이키는 남정네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올해 긴 장마와 태풍으로 고추 값이 비싸다고 해도 그건 어쩌다 운 좋은 몇 안 되는 남의 이야기이고, 수확하는 농작물마다 쭉정이어서 추수철에 더욱 시름겨운 남편의 까만 얼굴에 유난히 눈길이 많이 갔다.

봄에는 파종하느라 변변한 꽃놀이 한 번 못가고 가을엔 추수하느라 제대로 된 단풍놀이는커녕 하루도 편하게 쉬지 못한 그네들이 안쓰럽고 농민의 아내로 산 내 청춘도 가여웠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문득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의 '사계'의 가사가 떠올랐다. 인터넷에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라는 기사를 보다가 인용된 그 노래를 찾아서 들은 지 며칠 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농촌에 뿌리를 박으면 죽을 때까지 전체 국민의 식량지기로 살면서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온 세상 사람들 꽃밭으로 몰려도' 농민은 땅만 파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대학 수업도 대면으로 전환되고, 해남읍에서는 그동안 미뤄뒀던 교육과 강좌가 여기저기에서 많이 열리고 있다.

교육에 목말라 있던 참이라 그 중 몇 개를 신청해서 받고 있는데 교육장을 둘러보면 생산하는 농민이나 어민을 찾아보기가 정말 어렵다.

요즘 농촌은 예전처럼 농번기와 농한기의 경계가 없다. 옥천에서 살고 있는 한 친구는 2월에 밤 호박 파종을 시작해서 7, 8월에는 수확하고 판매하지만 이 일만 하는 게 아니다. 그 사이에 150여 마지기 소작논에 벼를 심는다. 8월 말에서 9월 초는 배추를 파종하고 10월에 가을걷이를 한 후 보리를 갈고 한겨울까지 배추를 절인다. 아파도 치료를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는 친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병원에 오느라 낸 짬에 잠깐 만났다.

한참 일하다 고장 난 콤바인을 고칠 시간이 없어 새로 장만했더니 1억원이 넘는 빚이 더 늘었다며 그놈의 빚은 갚아도 갚아도 줄지도 않아 헤어 나오지 못할까봐 두렵다고 했다.

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서는데 '노찾사'의 어떤 노래 가사가 머릿속을 맴돈다.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오래 못가도 어쩔 수 없지,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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