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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우수영 발굴 의미 : 내아·동헌 건물 실체 처음 확인15세기 축조 후 점차 확대
분청·백자 등 수백점 출토
노영수 기자  |  5536@h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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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13  17: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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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조사 중인 옛 전라우수영 터.

해남군이 지난 5월부터 국가 사적 제535호인 해남 전라우수영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가운데 중심 관아는 웅장한 규모의 축대, 담장 등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우수사가 기거했던 관사인 내아(內衙)와 집무실인 동헌(東軒) 건물 일부가 처음으로 발굴됐다.

이번 조사에서 관아로 향하는 도로망의 진출입 시설과 건물 축조를 위한 토목과정, 중심 관아 영역 밖의 건물 등도 확인됐으며, 우수(右水)명 초기 백자와 함께 명문와, 막새류, 상평통보 등 유물 수백여점도 출토됐다.

이번 발굴조사는 전라우수영 종합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재)대한문화재연구원이 맡고 있다.

우수영은 조선시대 전라우수영이 위치한 곳으로, 세종 22년인 1440년 설치되어 1895년(고종 32년)까지 450년 이상 유지된 군사적 요충지이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우도 연해지역 14관을 관할하는 본영으로, 이순신 장군이 명량대첩의 대승을 거둔 울돌목 해협이 위치해 있다.

내아(內衙) 영역은 명량해협의 바다가 조망되는 능선 일부를 절개·성토해 대지를 조성한 후, 외곽으로 계단식 축대와 담장을 둘러 주요 건물의 위상을 극대화했다. 초축 건물 2동은 온돌이 있는 구조로 15세기 후반에 큰 규모로 축조됐고 16~17세기에 대대적인 중창(重創) 과정을 통해 4동으로 확대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헌(東軒) 영역은 현재 건물지 일부와 축대, 진출입로가 확인됐다. 건물은 잔존 5칸으로 남에서 북으로 향하는 행각(行閣·건물 입구 또는 건물과 건물 사이의 복도) 건물로 판단된다. 축대의 남쪽은 점판암재로 높고 웅장하게 축조했으며 동쪽은 계단식으로 높게 해 다른 영역과 구분했다.

특히 동쪽 주 출입로는 근대까지 이용했던 곳으로 명량대첩을 앞두고 이순신 장군을 포함한 수많은 장수들이 모여 회의를 하기 위해 행차했던 곳으로 여겨진다.

유물은 수백점이 출토됐으며 분청 및 백자, 명문와, 동전 등을 통해 건물의 연대 및 성격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초기 백자는 중앙 관요에서 생산한 것으로 여러 점에 우수명이 새겨져 있으며 지방 관요 출토품도 여러 지역에서 상납된 것으로 파악된다. 기와류는 막새류, 연호명 명문와(崇禎…六十…1688년 제작) 등이 함께 출토됨으로써 건물의 연대와 성격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번 발굴조사로 명량대첩의 배후인 전라우수영의 중심 관아터에 대한 실체가 확인되면서 전라우수영 경관 복원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명현관 군수는 "전라우수영은 전략적 요충지이자 이순신 장군 유적의 중심지다"며 "연차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전라우수영의 전모를 추적해 역사적 위상을 제고하고 대국민 역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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