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숙(해남고 교사)

 
 

얼마 전 저녁 수업 후 퇴근길에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한 여학생이 학교 밖으로 나가려는 것을 발견했다. 거리가 가까워지니 울먹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이야?" 라는 말을 꺼내자마자 학생이 "선생님" 한마디 내뱉고는 와락 안긴다. "오메 왜 그려"라고 대답하고는 토닥토닥 안아주었다.

한참 뒤 학생은 "그냥 개인사가 있어요. 힘들어서 야자 감독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잠시 학교 한 바퀴를 걸으려고 하던 중이였어요. 누군가 꼬옥 안아주길 바랐는데, 담임 선생님은 남자 선생님이셔서 못가고, 이렇게 그냥 밖에 나왔어요."

"그래 진짜 영화처럼 우리 만났다. 다행이다." 나는 몇 번 더 등과 어깨를 토닥여주며 "학교 밖으로 가서 크게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오렴."이라는 말만 더해주고 헤어졌다.

왠지 내 가슴이 따뜻해짐을 느끼며 쓸쓸하지 않은 퇴근길이었다. 교사 생활을 하다 내게는 가끔 있는 일인데, 학생들 덕에 내 가슴이 따뜻해진다. 이 따뜻함이 '따땃하게' 내 마음과 다른 학생들 마음에 전해질 겨울 땔감이 되리라.

매주 수요일은 동아리 활동이 있는 날이다. 동아리 실에 들어가니 불도 안 킨 교실이 컴컴하고 학생들 얼굴도 컴컴하다. 명색이 심리학 동아리인데 왜 이렇게 어두울까? 동아리 이름이 싸이코(Psycho)라서 그런가?

준비해갔던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을 책상에 놓고, 학생들에게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학교 산책을 하며 심리학 이야기를 해볼까?" 학생들이 따라 나온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가을이 절정이다. 해님이 반짝하고, 학생들 얼굴이 반짝한다.

고양이를 만나면서 동물과 인간의 교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교문 앞에 가서 교문안과 밖의 경계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꽃이 핀 곳을 찾아다니고, 운동장에 앉아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으니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그래. 너희들에게 심리학 동아리가 필요한 게 아니라 그냥 심리 동아리가 필요했구나. 내가 잘못했네. 내가 잘못했어." 학생들과 마음을 다루는 공부를 하고 싶었으면서 너무 학문적으로 접근하려고 했던 내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요즘 수업 단원은 서양 고대 사상을 지나 근대에 접어들었다. 근대에서는 인간의 판단과 행동의 근거를 신앙에서 이성과 경험으로 바꾸어놓았다. 인식에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다. 나도 한동안 근대 이성주의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를 절정으로 엄청 소리를 높이며 수업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경험주의에서 공감이라는 감정을 강조했던 흄이 새삼 와 닿는다. 공감과 인간성이라는 것이 인간이 살면서 자신의 행동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말이 가슴에 맴돈다.

그동안 학교에서 너무 이성중심의 교육만 강조했던 것은 아닐까? 코로나로 가속화된 언택트시대에 기술에 감정을 입히는 휴먼터치가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이 말하니, 나의 질문에 힘이 실린다. 그래. 학교에서 감정의 성장이 중요한 것 같다. 나는 '갬성적인' 교사가 되리라. 그래서 '갬성 학교'를 한번 만들어보리라. 새로운 꿈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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