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0여 년 전인 기원전 3세기, 동서양을 대표하는 두 나라는 엇비슷한 시기에 통일의 시대를 연다.

동양에서는 기원전 221년, 진나라가 550년간의 춘추전국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다. 서양에서는 이보다 1년 전인 기원전 222년, 고대 로마가 오랜 정복전쟁을 거쳐 로물루스가 로마라는 도시를 건설한 지 530년 만에 북부 밀라노를 완전 장악하며 지금의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게 된다.

다만 두 나라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된다. 진나라는 흉노족(몽골의 한 부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는다. 수성(守城), 즉 단절을 통한 지키기에 들어간 것이다. 북방 유목민족의 침공을 막기 위해 춘추전국시대부터 성벽을 쌓았으나, 동서로 길게 이어진 만리장성은 진시황이 처음 시작했다.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고 하는 만리장성은 이후 명나라까지 계속 축조해 길이가 6400km에 이른다. 땅 지키기에 전력을 쏟은 진나라이지만, 수명은 고작 15년에 그쳤다. 그것도 흉노족이 아니라 유방과 패권을 다툰 항우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고대 로마는 비슷한 시기에 군인을 투입해 '로마 가도'라 불리는 도로 건설에 자원을 집중한다. 이는 진나라가 수많은 백성을 동원해 만리장성을 쌓은 것과도 다르다. 로마 가도의 목적은 군대와 물류의 빠르고 활발한 이동이다. 로마 황제마다 도로 건설을 큰 업적으로 삼으면서 500년간 무려 8만㎞의 가도를 만든다. 이를 두고 프랑스 동화작가인 라 퐁텐(1621-1695)은 '우화'에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적었다. 고대 로마는 서로마 멸망(476년)까지 1200여 년간 존속한다. 동로마(1453년 멸망)를 기준으로 하면 2000년이 넘는다. 로마 가도의 유효성을 알아차린 히틀러가 밀어붙인 게 독일의 자동차 전용도로인 아우토반(Autobahn)이다. 아우토반은 2차 세계대전에서 기대만큼의 활용을 하지 못했으나, 전후 독일의 경제 부흥에 대동맥 역할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 고속도로는 1968년 개통된 경인을 시작으로 현재 45개 구간이 이용되고 있고, 광주~강진 등 17개 노선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여기에 지방도를 포함하면 전국이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고속도로와 철로가 원활한 인적·물적 유통수단이라면 숲길이나 둘레길, 올레길은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의 공간이다.

우리나라 외곽을 연결하는 4개 구간, 4570㎞에 이르는 코리아둘레길이 조성되고 있다. 가장 먼저 2016년 개통된 '해파랑길'은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동해안을 따라 부산 오륙도까지 770㎞의 해변·숲길이다. 이어 지난달 31일 해남 땅끝마을 맴섬에서 개통 선포식을 가진 '남파랑길'이 두 번째로 열렸다.'남쪽의 쪽빛 바다와 함께 걷는 길'이란 뜻의 남파랑길은 해남 땅끝에서 부산 오륙도까지 1470㎞의 탐방로이다. 이어 서해랑길(땅끝마을~인천 강화 1804㎞)과 'DMZ 평화의 길'(인천 강화~강원 고성 526㎞)도 수년 내 트인다. 코리아둘레길은 한반도 최남단(해남 송지면 송호리)에서 최북단(함경북도 온성군 남양면 풍서리)까지 직선거리인 1013㎞의 4배가 넘는다.

단지 걷기만으로도 우리 몸에 35가지의 효능이 있다고 한다. 여기에 둘레길이나 숲길 걷기는 마음까지 건강해진다. 앞으로 코리아둘레길 완주도 작심하면 해볼 만하다. 시속 4㎞로 하루 10시간씩 걷는다면, 4개월 코스이다. 아니면 구간 구간을 찾아 힐링의 시간을 가져보자. 그것도 아니라면 남파랑길의 해남 3개 구간(46㎞)의 하나라도 만나보자.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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