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옥(해남교육참여위원장)

 
 

아름다운 고향! 찬사와 경탄이 여기저기 넘치지만 한 번도 고향이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 없었다. 고향, 아름답기 이전에 기본도 안 지켜지는 어이없는 추문만 떠도는 곳. 견디다 견디다 가난에 짓밟혀 떠나가는 사람들뿐인 곳.

모든 권력과 부는 중앙에만 있고 지역은 핵발전소, 중금속 도금공장, 쓰레기 처리장, 소음 많은 군 공항, 축사 같이 중앙이나 도시가 껴안기 싫은 시설들을 설치하려고 기웃대는 곳이다.

문제의 뿌리는 자원과 기회를 분배하는 권력을 중앙만이 갖고 있는데 있다. 중앙만이 차지하는 권력의 카르텔, 그 구조를 온존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교육, 입시제도다. 일타강사가 즐비한 도시의 아이들만이 갈 수 있는 스카이(SKY), 스카이를 통해서만 갈 수 있는 반반한 일자리, 그 일자리는 중앙에만 있고 어렵게 바늘구멍 뚫고 입성한 아이들조차 시골 고향에 내려오지 않는다.

이 관문을 통과하는 시험은 공정할까? 어떤 시험이든 공정하다는 신화는 의심해보아야 한다. 사실은 어떤 시험도 공정하지 않다. 토끼를 이길 수 없는 육상 레이스 경주는 애초부터 거북이에게 턱도 없이 불공정했다. 시험이란 특정집단에 유불리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수능시험이 가장 공정하다지만, 시골의 학생들은 수능시험 잣대만으론 스카이에 한 명도 들어가기 어렵다. 시험에서 공정함이란 심판의 엄격함 이전 단계인 시험설계과정부터 추궁되어야 한다.

학생부 종합전형은 우수한 내신성적 등으로 지역학생에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만들어졌다. 그나마 지역의 학교들이 스카이에 한두 명씩이라도 이름을 올리게 된 건 지역균형선발, 농어촌 특차전형 같은 바늘귀만한 길을 열어놓고 난 뒤의 일이다.

입시제도의 설계와 운영은 학생 선발의 공정성 보장에도 중요하지만 아사상태인 지역 살리기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입시에 성적 올리는 학교가 없으니 학생과 주민은 지역을 떠나고 학교가 없으니 귀농희망자조차 지역에 돌아오지 못한다.

이 판국에 화나는 뉴스, 서울대의 한 예체능계열 학과가 학생부종합전형(학종) 가운데 학교장 추천으로 다양한 인재를 뽑는다는 취지를 담은 지역균형선발전형의 면접평가에서 지원자 17명 전원에게 일률적으로 최하 등급을 부여하고 불합격시킨 사실이 교육당국의 감사로 적발됐다. 대신 서울대는 해당 과의 모집인원 6명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점수로 선발하는 정시전형을 통해 뽑았다.

전국의 학생 중 단 6명이 들어가는 바늘귀만한 기회, 실제로 지역학생을 배려하려 만든 그 자리를 슬쩍 지워버리고 그 6명의 자리까지 수능점수 전형(정시)으로 뽑아버린 것이다. 불리한 거북이에게 조금이라도 기회를 주기 위해서 만든 '헤엄치기 전형'을 해당 교수들은 달리기의 기본도 안 되어 있으니 나머지는 보나마나라는 식의 자의적 잣대를 대고 봉쇄해버린 것과 같다. 그들은 애초에 토끼 편이라서 달리기를 못하면 아무 것도 못하는 존재로 보았으리라.

이 전형에 목숨 걸고 3년을 준비한 학생도 교사도 학교도 화가 나고 허탈해지는 순간이다. 지역이 배제되는 체계, 문화가 이토록 완강하다. 군수, 교육장, 고등학교장들이 해당 교수들을 파면하라고 상경시위라도 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숨죽여선 안 된다. 성명이라도 내고 입장발표라도 있어야 한다.

이번엔 교육부의 특정감사로 밝혀졌지만 감춰진 비슷한 일이 그 전부터 많았을 거란 의심은 차고 넘친다. 드러났을 때 한 번은 물어주어야 한다. 그냥 넘어가면 고질이 되고 당연시 된다. 지역 살리기는 이렇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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